학생 A가 연구실을 찾아왔다. 스물 두 살, 3학년 학생이다. 인공지능(AI)이 좋아 관련 전공으로 진학했고, 1학년 때에는 미적분, 선형대수, 일반물리 등을 들으며 수리적 기초를 다졌다. 2학년 때에는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국내 학술지에 논문까지 게재했다. 여러 공모전에도 입상하면서, 이제는 아예 휴학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딥러닝 알고리즘을 공부해 보겠다고 한다.
이런 대견한 학생이 드문드문 있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많은 학생이 자기주도적 인재의 양상을 보인다. 어려서부터 부모 등살에 못이겨 사교육에 푹 절여져야만 '인서울' 대학에 갈 수 있다거나, 요즘 학생들은 수동적이고 다 떠먹여줘야 한다는 편견은 그야말로 편견이다. 요즘 강의를 하다보면, 혼자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파고들어 상당한 수준에 이른 학생이 어려운 질문을 던져서 곤란한 경우도 종종 있다. 온라인에서 얻은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관점의 영상을 활용해 공부해서 스스로 자신만의 버전으로 이해한 지식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자기주도적 학습 양상은 MIT, 스탠퍼드 등 미국의 유명 대학이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 온라인 강의에도 힘입은 바 크다. 오픈 코스웨어라고 불리는 이러한 무료 온라인 공개강의는 세계적 저명 학자의 강의를 직접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코세라나 유데미 같은 서양의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는 수 만명이 듣는 강의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으며 패스트캠퍼스나 클래스101 같은 국내 사이트도 자기계발을 하려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제 교육의 보편화와 민주화는 제도권 학교보다는 학교 담장 밖의 영역에서 더 활발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위기감을 느낀 대학은 온라인 석사학위 등을 개발해 시간이 없는 현대인을 위한 학위과정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 유수의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의대생 정원을 늘리는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어떤 이는 공대로 와야할 우수 인재가 의대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걱정하고, 다른 이는 의사의 질이 떨어진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의사가 공학을 공부하고, 인문계 전공자가 공학을 공부하고, 공학자가 인문학을 공부해야만 남과 다른 창의적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시대다. 19살 나이에 어떤 전공을 선택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인생 삼모작을 위해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인데 앞으로 학과별 정원의 의미는 별로 크지 않게 될 것임을 감히 예견해 본다.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시대에 학과와 전공의 담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오히려 닫힌 커리큘럼을 고수하는 학문일수록 이르게 도태될 것이다. 인간의 유전체를 분석하는데에는 고도의 데이터사이언스가 활용된다. 휴먼 에러가 많은 수술일수록 로봇공학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인체 절개를 최소화 하는 수술법에는 첨단 장비가 필수다. 의학 자체는 거대한 융합학문으로 전환되고 있다. 인문학도 공학도 통계학도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는 전방위로 활용되고 있다.
학문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정체성 타령을 하는 구식 학문과 타학문의 성과를 신속히 수용하는 신식 학문이 분화되고 있다. 의사과학자가 필요하다면, AI윤리 전문가도 필요하며, 기술에 아트를 접목하는 테크노아티스트도 필요하다. 우리의 미친듯한 교육열이 긍정적으로 발현된다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인재가 미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젊은 융합인재의 활약을 고대한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