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지난주 동부 격전지에서 빠른 철수를 위해 기동이 어려운 부상자를 남겨두고 떠나, 낙오된 병사 대부분이 그곳에서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19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은 지난 17일 동부 격전지인 아우디이우카에서 철수한 우크라이나군에 소속된 한 병사의 증언을 인용해 이 같이 보도했다.
아우디이우카는 지난 2014년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인근 도네츠크시를 포함한 돈바스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한 이후부터 최전선이 된 곳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지난주 러시아의 지상공격이 강화되기 전 이 곳을 포기하고 철수하면서 러시아의 점령지가 됐다.
아우디이우카 중에서도 남부의 핵심 방어 거점 제니트에 주둔했던 제110여단 소속 병사 빅토르 빌리아크는 “한 지휘관이 라디오를 통해 부상자를 대피시키지 말라고 직접 지시했다”며 '300명의 부상자를 남겨두고 모든 것을 불태워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남겨진 부상자 가운데 일부는 자력으로 탈출하려고 했으나 실패했으며, 그 곳에 남겨진 6명의 병사는 현장에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고 전했다. 빌리아크는 “아우디이우카로 가는 길목은 시체로 가득 차 있다”며 남겨진 이들이 남긴 메시지를 읽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우디이우카에서 2년 가까이 싸워 온 콜사인 '장고', 전투 의무병 이반 지트니크(30)도 우크라이나군 철수 이후 남겨진 6명의 병사 가운데 하나다. 심각한 부상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는 군이 철수한 이후 누이 카테리나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모두가 철수했다. 다리 두 개가 부러졌고, 등에는 파편이 박혔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주변에 있는 5명 중 4명이 자신처럼 걸을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카테리나는 “그들(부상자)은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대피)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당시 진지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하면서 남긴 약과 식량마저 고갈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이 지역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부상자를 데려가기로 양측이 합의했으며, 12시에 러시아군이 지트니크를 데리러 온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트니크는 끝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테리나는 지난 16일 러시아 군사 블로거가 해당 지역을 촬영해 게재한 영상에 전사한 지트니크의 모습도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부상자들의 사망이 러시아군의 협의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상자들을 러시아군이 먼저 대피시키고, 이후에 다른 전쟁 포로들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유명 군사 블로거 유리 부투소프는 당시 지트니크와 함께 제니트에 남겨진 병사 6명의 실명을 모두 공개하면서 거동이 어려운 부상자를 이송할 차량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총장도 이와 관련해 '계획적 살인과 결합한 전쟁법 및 관습 위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제110여단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제니트 진지가 포위된 후 부상병을 대피시키기 위해 러시아군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나중에 러시아군이 공개한 영상을 통해 이들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군은 이와 관련한 CNN 측 질의에 아직 답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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