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일 LG디스플레이 최고경영자(CEO)로 업무를 시작한 정철동 사장은 “실적 턴어라운드가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임직원에게 보낸 취임 메시지에서 “회사가 수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막중한 소임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사장은 작년 연말 정기 인사에서 LG디스플레이의 '구원 투수'로 투입됐다. 1984년 LG반도체에 입사한 뒤 디스플레이·화학·이노텍 등 부품·소재 쪽 계열사를 두루 거친 그는 2019년부터 LG이노텍 대표를 맡아 영업이익 1조원 회사로 키웠다.
LG디스플레이는 7개 분기만인 작년 4분기 흑자전환 했으나 1분기 다시 적자전환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이폰 등 연말 특수가 지나서다. LG디스플레이가 온전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형 디스플레이, 특히 TV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이 활기를 띠어야 하지만 세계 TV 시장은 아직 침체돼 있다.
턴어라운드가 급선무인 LG디스플레이 자금사정이 넉넉할 리 없을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LG전자에서 자금을 차입한 데 이어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금융권에서 공동대출(신디케이트론)도 추진했다. 회사는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올해 필요 설비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걱정스런 대목이 있다. 8세대 OLED 투자다. LG디스플레이가 세운 올해 설비투자 계획에는 8세대가 빠져있다. 8세대는 노트북이나 모니터에 들어갈 중대형 OLED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 기술이다. 스마트폰 중심의 현 OLED 시장을 확대할 무기다. 작년 초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장 먼저 양산라인 구축에 나선 이유고, 작년 말에는 BOE도 투자를 결정했다.
LG디스플레이는 최대한 시간을 벌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현재 갖춘 6세대로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용 OLED를 만들고, 노트북 수요에도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회사가 8세대 투자의 중요성을 몰라서 이런 대응 계획을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이미 기술적 제반 준비는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발목을 잡는 건 자금 사정이다. 2년 연속 적자인 상황에서 차세대 설비투자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LG디스플레이에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8세대 투자가 화두가 된 결정적 이유는 애플 때문이다. 애플이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사 노트북에 OLED를 탑재키로 하면서다. 전 세계 IT 시장에 영향력 큰 애플이 구매를 결정한 만큼 OLED의 신시장 개화는 확실시 된다.
2027년 제품이 출시되기 위해서는 최소 2년 전 설비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라인 구축에 1년, 설비 안정화 1년이다. 이를 바탕으로 역산하면 LG디스플레이가 연내 또는 늦어도 내년 초에 8세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5월에는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LG디스플레이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알 수 없다. 극적인 기회를 마련해 8세대 투자를 할 수 있고, 신규 투자는 무리라는 판단에 투자 자체를 접을 지 모른다. 노트북·모니터 OLED 시장 개화가 늦어져 LG디스플레이의 '신중론'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래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시간은 한정돼 있고, 결단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결정은 단지 LG디스플레이만의 미래가 아닌, LG그룹과 맞물려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과도 연결돼 있기에 중요하다. 신중하면서 현명한 결정이 내려지길 기다린다.
윤건일 소재부품부장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