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인류문명에 본격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인구는 14배 증가한 반면, 생산은 240배, 에너지 소비는 115배가 늘었다고 한다.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기저에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구체화한 수학적 이론이 있었다. 인류는 이를 통해 기술적 진보를 성취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뉴턴의 운동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에너지 혁명을 이뤘으며 통계학을 통해 우리의 삶과 죽음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거창한 기술을 차치하고서라도 언어학이나 심리학에서도 수학적 접근이 필수라고 하니 가히 우리는 수학 문명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수학을 중요하지만 어렵고, 나와는 상관없는 학문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문·이과를 떠나 상당수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거나 입시가 끝남과 동시에 수학을 등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수학은 현대문명의 근간이며, 국가의 미래 경쟁력과 생존을 결정하는 필수적 학문이다.
미국, 영국처럼 수학과 기술을 통해 세계패권을 주도해 온 나라들 뿐 아니라 일본, 인도 또한 수학을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학문으로 정의하고 수학교육의 저변 확대와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지난 십여년간 우리나라의 수학교육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역행해 왔다. 학습부담 경감과 사교육 억제라는 명분에 맞춰 '쉬운 수학'으로 교육방향이 설정돼왔으며, 이미 상당수 대학에서는 이공계 전공 시간에 고교수학부터 강의하는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더해 2028학년도 대입수학능력 평가부터는 미적분II와 기하 같은 심화 수학 과목을 제외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심화수학 배제 정책은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과학기술 경쟁력의 근본을 위협할 것으로 보여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학습역량이 가장 높은 고교시절에 기초수리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뤄졌을 때, 경영, 경제, 공학, 이학 등 연계된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며,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수학적 사고능력은 미래사회를 대비하기위한 인류적 필수역량이다.
일부 학생들만 심화수학을 선택하여 학습하도록 하는 '학습부담경감' 명분은 대학시험에도 나오지 않고 내신등급도 불리한 심화과목을 대부분 수강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나라 수학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한다. 득보다 실이 많다. 이미 학생들은 내신등급우려로 심화 과목들을 기피하고 학교에서는 수강생이 적어 개설하지 않는 현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수학을 쉽게 만들면 사교육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교육 약화' 논리 또한 현실성이 매우 부족하다. 대학에서는 수험생의 수학적 능력을 당연히 직간접적으로 변별하고자 할 것이고,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개설하지 않거나 선택하지 못하는 심화과목을 학원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접근은 사교육 감소를 위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 또한 바람직하지 않기에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짧은 식견으로, 심화 수학의 배제 대신 깊이와 범위를 아우르면서 '수학 문명'을 체화하는 교육을 제안해본다.
특히 고교수학에서는 미적분, 통계, 기하, 행렬을 활용하여 일상의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수학의 유용성을 체감하도록 하고, 대학에서는 공학적 문제를 긴 호흡으로 해결하는 실무적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설정이 필요할 것이다. 주요국의 수학 심화교육 추세도 벤치마킹해 중장기 교육과 입학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한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겠지만 수학은 과학기술의 근원이고, 그 교육에 대해 아무리 고민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너무 어려운 수학도 문제지만 쉽기만한 수학은 미래가 없는 허상이다.
박영철 한국외국어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부회장 ycpark@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