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를 비롯한 17개 협·단체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 정책 공약을 제안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 새 국회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소프트웨어(SW) 업계 숙원 과제를 모아 전달한 것이다.
과제에는 초거대AI 생태계 육성, 클라우드 산업 활성화, 스타트업 육성, 디지털 영토 확장, AI 전문인력 양성 등 디지털 전환 시대에 필요한 내용을 두루 담았다. 그러나 '과제1'로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역시 'SW 가치 인정'이었다. SW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 다른 모든 과제에 우선한다는 의미다.
SW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인 탓에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하드웨어 제품 대비 저평가되기 일쑤다. 개발비를 비롯해 원가 측정이 어렵다며 공공기관에서조차 가격 후려치기가 비일비재하다.
기획재정부가 대형 공공 SW사업 예산을 30% 이상 삭감해온 것은 대표적 사례다. 기재부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해 과업과 비용을 평가받은 사업에 대해서도 명확한 근거 없이 예산을 30% 이상 깎아왔다. 큰 사업이면 예산의 30% 이상을 삭감하라는 '관행적인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게 SW 업계 푸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자재 가격에 매년 물가 및 임금 인상분을 반영하는 건설업과 달리 SW 개발 단가는 인상폭이 미미하다. 한국은행·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SW 분야 원가(임금 및 생산자물가) 인상률은 26.4%인데 반해, SW 개발 단가 인상률은 10.9%에 불과하다. SW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낮은 탓이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적정 가격을 받을 리 만무하다. 상용SW 기업은 제품을 팔아도 연구개발(R&D)에 투자할 돈이 없어 경쟁력을 잃게 된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등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도 요원해진다.
IT서비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폭 삭감된 예산으로 사업을 수주하게 되면 수익성 악화로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발주처의 고질적 과업변경(추가)으로 인한 손실은 모두 떠안아야 한다. 결국 인력을 줄이고 저급 개발자나 외주사를 투입함으로써 시스템 장애라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협·단체는 SW 가치 인정을 위해 먼저 기능점수(펑션포인트) 단가를 높이고 이를 정례화할 것을 요구했다. 사업 변동성을 고려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고 이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강조했다. 정보화사업 예산과 과업범위 및 규모의 투명한 공개, 공정한 과업 변경, 변동형계약제도 등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는 디지털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탄탄한 SW 산업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를 비롯한 디지털 혁신 기술의 기반도 결국은 SW다. SW 경쟁력 없이는 글로벌 SaaS도 생성형AI도 디지털플랫폼정부도 구현이 어렵다.
정부와 새로운 국회는 협·단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SW 가치를 인정하려면 먼저 SW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이후 필요한 과제를 하나씩 시행해 나가야 한다. 디지털 강국을 넘어 디지털 초강국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안호천 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