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3일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가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위원회는 총리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 정부위원과 민간 전문가로 구성돼 지난해 4월부터 37회의 회의, 의견 청취, 공개토론회를 거쳐 각계의 제언을 검토하고,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정책방안을 마련했다.
위원회 출범 시 문제 인식은 이러했다. 미디어·콘텐츠 산업은 거대 글로벌 기업 중심으로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등 우리 콘텐츠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나 방송, OTT 등 미디어 산업은 치열해진 경쟁으로 성장이 정체되거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한류의 원천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인 미디어·콘텐츠 산업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도록, 미디어와 콘텐츠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발전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넷플릭스 천하에서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콘텐츠 분야의 지속 성장을 위해 미디어와 콘텐츠 동반성장 전략을 찾고자 한 것이었다.
필자도 본 위원회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는데, 본고에서는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정책방안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과 규제를 혁신하는 방안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우선 위원회는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재정 기반을 든든히 하기 위해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마중물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정부는 영상 콘텐츠 제작비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최대 30%까지 확대하고, 중소·중견기업이 영상콘텐츠 문화산업전문회사에 투자한 금액에 대한 3%의 세제 혜택을 신설했다. 기본공제와 추가공제를 합하면, 대기업 3→15%, 중견기업 7→20%, 중소기업 10→30%로 공제율이 상향된다.
또 경쟁력 있는 대형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국내 제작사의 콘텐츠 IP 보유·활용을 돕기 위해 민관 합동으로 1조원대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를 신규 조성한다. 2024년 총 6000억원을 조성하고 향후 2024~2028년 5년 간 총 1조200억원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 규제 혁신인데 당초 목표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미디어 시장에서 한국에만 존재하는 규제는 철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반드시 존치할 필요가 있는 규제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엄밀히 검증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위원회는 혁신을 저해하는 낡은 방송규제 13개의 규제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대표적으로 홈쇼핑, 케이블, 위성, IPTV 등 유료방송의 재허가·재승인제를 폐지하고, 지상파방송 및 종편·보도 채널의 최대 유효기간을 현재 5년에서 7년으로 확대한다. 또, 케이블 방송, IPTV, 일반 PP의 자유로운 시장 재편을 저해하는 시장점유율 규제를 폐지한다. 방송광고 시장의 자율성과 활력 제고를 위해서는 현행 7개의 복잡한 방송광고 유형 프로그램 내 광고. 프로그램 외 광고, 기타 광고 3개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항목별로 구체적으로 의미를 살펴본다.
먼저 인허가 이슈에 있어 유료방송은 최초 허가를 제외하고 재허가, 유효기간이 폐지되고 지상파, 종편, 보도의 허가 유효기간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유료방송사는 투자와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나가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며,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도 행정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미래의 미디어·콘텐츠 산업환경을 조망하고, 보다 장기적인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부관 부가 원칙을 허가 기본계획에 명시하기로 한 점은 종래 허가와 관련성이 없는 부관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는 장점이 있을 수 있으나, 당초 부관 부가 사유를 법정화해서 조금 더 행정의 재량권을 통제하려는 시도에서는 후퇴한 것이다.
다음 소유, 겸영 문제는 마지막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소유, 겸영 규제의 완화로 민간 자본의 미디어 시장 유입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방송의 공익성 등을 고려하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팽팽했다. 작년 11월 공개토론회 상 초안에는 최종 발표안에 더해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에 대기업, 일간신문(뉴스통신), 외국인 지분 제한을 완화하는 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대기업과 일간신문 등은 지상파 10%, 종편, 보도는 30%, 외국인은 지상파는 금지, 종편 20%, 보도 10% 소유 제한이 있는데, 이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로 대기업, 외국인 등이 경영권을 가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부 지분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다만, 대기업 기준을 자산규모에서 GDP와 연동해서 정하도록 합리화한 것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채널 운용 규제의 경우에는 당초 지상파 의무재송신을 제외하고는 13개의 의무편성 채널 규제를 폐지하고 국내제작 비율, 순수외주제작 비율 규제도 폐지하는 방향이 검토됐으나, 공익적 채널의 구성, 운용의 필요성, 국내 콘텐츠 산업 보호, 영세한 제작사 보호 등의 필요성이 인정돼 존치됐다. 다만, 1개국 수입물 편성규제를 완화하고 오락물 편성규제는 폐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또 광고 종류를 단순화하고 광고총량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방송프로그램 및 광고 편성의 자율성 제고를 통해 광고시장의 창의성이 증대되고 방송광고 매출액 증가하여 경쟁력 있는 방송콘텐츠 제작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고열량·저영양 식품 등 광고제한 품목 완화는 소관 부처의 규제혁신 의지가 중요한 만큼 적극적인 검토를 기대한다.
지난주 발표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계획도 이런 미디어 분야 규제혁신 방안을 충실히 담고 있음과 동시에 광고 판매규제 형평성 강화와 협찬 규제 완화가 추가됐다. OTT 등 뉴미디어 활성화, 매체 간 차등규제로 인한 방송광고시장 침체 해소를 위해 크로스미디어렙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다. 크로스미디어렙은 미디어렙사가 방송과 연관된 온라인광고를 방송광고와 결합판매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다음 협찬주명을 프로그램 제목으로 사용하는 제목협찬을 금지하는 협찬고지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계획인데, 우선적으로 지역·라디오 프로그램에 정부·공공기관이 협찬한 경우, 제목협찬을 우선 허용할 계획이다.
재정지원, 규제혁신 외에도 글로벌 진출과 신시장 선점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 OTT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도록 스마트TV용 'K미디어·콘텐츠 전용채널'을 확대 운영하고 또, 미디어·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유통 등 전 단계에서 AI를 접목하고, 버추얼 스튜디오를 구축하는 등 첨단기술을 고도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혁신을 이끌기 위해서는 창의·융합형 전문인력을 1만명 육성한다. 또 지속 가능한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외주제작사에 대한 불공정행위 규제, 지역방송 겸영 규제 완화, 케이블 지역 채널의 커머스 방송 상시 허용을 추진한다.
다만, 아직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이번 정책방안의 상당 부분 특히, 규제혁신 내용은 방송법 등의 개정이 이루어져야 실행가능한 사항이다. 비록 이번 정책방안은 정부, 여당, 산업계와의 의견이 조율된 것이지만, 아직 야당을 비롯한 언론단체와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회의원 선거 후 본격적인 법안 개정 작업이 시작되면 여야 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설득과 타협을 통해 원만한 합의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가능한 사항은 조속히 개정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 아직 다루지 못한 중요한 이슈가 방송·미디어 법제 패러다임 개편이다. 이번 정책방안은 진입, 소유, 편성, 광고 등 미디어법상 각론에 해당하는 개별 규제에 관한 혁신안이었지만, 미디어법의 프레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예컨대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미 방송법, IPTV법, 전기통신사업법 등 개별법에 분산된 미디어 규율체계를 정비해, 신·구 미디어를 포괄하고 미디어 산업의 지속가능 성장을 지원하는 통합미디어법(안)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부처 간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공영과 민영 방송의 구분과 역할 정립, OTT의 규율체계의 확립, 나아가 미디어 정책 거버넌스 정비 등 굵직한 이슈가 남아 있다.
그동안 신정부 출범 때마다 미디어 정책은 중요한 국정과제였으며 몇 차례 이번 위원회와 같은 다부처,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거버넌스가 존재했다. 이번 위원회도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과 민간전문가의 헌신적인 참여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지만 여전히 이런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중심이 되면서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범 부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마지막 회의에 참석했던 문체부 장관, 방통 위원장 등도 이런 정책협의체가 지속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dysylee@korea.ac.kr
〈필자〉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부터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임하고 있으며, 국무총리 소속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규제심사위원장 및 범정부 마이데이터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경험과 법률 실무를 기반으로 행정규제, 방송, 통신, 인터넷, 데이터·AI 분야 법과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