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42〉디지털 팬덤에서 배우는 브랜드의 진정성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버추얼 아이돌로 알려진 플레이브가 지난달 9일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수만 명의 팬덤을 보유한 걸로 예상되는 이 그룹은 실제 인물이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활용해 3D 캐릭터 옷을 입고 5인조로 활동한다. 소속사 블래스트는 게임엔진과 모션 캡처 리타게팅을 통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버추얼 IP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술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번 플레이브의 성공은 타 아이돌 팬덤 사례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확인케 한다.

1994년 바바라 스턴 뉴욕대 교수에 의해 브랜딩에서의 진정성의 중요성이 강조된 이후, 진정성은 기업의 마케팅 영역에서 열광적 문화 현상처럼 퍼져나갔다. 디지털 인류학자 로건 맥러플린은 게임 산업을 예로 들며 팬 문화와 상업화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업계의 진정성이 다루어지는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는 현대의 팬덤 개념은 본질적으로 참여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문화 산업은 팬의 참여에 의해 생사가 나뉘는 산업이라 정의한다. 이러한 참여와 참여에 대한 권유는 팬들이 팬덤이 탄생하는 광활한 콘텐츠의 바다에 기여하는 제작자가 되도록 장려하며, 자본주의는 이러한 제작자들의 열정을 상품화해 콘텐츠 생산을 진정성 있는 광고의 무대로 전환하도록 부추기게 된다. 때문에 팬 커뮤니티의 상업화는 필연적으로 진정성을 저해하지 않아야 하며, 상업적 목적과 커뮤니티의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플레이브의 성공은 이러한 팬덤을 향한 진정성이 실제 인물이 전면에 서지 않는, 기술적 혁신을 통한 캐릭터로서의 활동에도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팬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블로그 글에서는 캐릭터 별 소개 및 짧게 움직이는 이미지를 추가해 입덕 모멘트라는 단어로 채워진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이 넘쳐난다. 이는 장난치고 웃는 아이돌의 사진에 뽀얀 필터링을 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는 기존의 팬덤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음악과 안무에 관심을 가진 뒤에는 실제 인물인지 가상의 캐릭터인지에 대해 불편함을 찾는 시선은 어느새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만큼 팬덤을 이루는 한 축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기술적 매개를 통해서도 진정성 있는 경험과 감정적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됨으로써, 진정성의 개념이 주도적인 팬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플레이브는 버추얼 그룹이라는 이유로 만족스럽지 못한 안무, 곡, 공연 장소 대관에서의 부정적 반응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후 캐릭터 뒤의 실제 인물들이 직접 작곡과 안무 작업을 이끌고 있다는 정보는 팬들에게 이 새로운 형태의 팬덤을 향한 부정적 댓글에 정당한 근거마저 부여해 주었다.

이처럼 상호 작용적이고 창조적인 공간이 된 팬덤의 변화, 재정의된 상업적 진정성의 의미는 플레이브의 성공을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사례에 그치지 않는 앞으로의 현대 사회와 문화 간 중요한 변화의 흐름을 확인하는 기준점으로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3D 가상 캐릭터를 통한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은 표현의 무한함은 앞으로의 업계 전반의 경쟁력의 질감마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로 유명한 라이엇게임즈(Riot Games)는 자사의 게임 캐릭터들이 걸그룹 콘셉트로 등장하는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해 양쪽에서 달려오는 지하철 사이에 태연히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는 등의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상황과 연출을 통해 6억 뷰를 달성한 사례가 있다.

진정성은 보통 기업 마케팅의 현실에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과 가장 거리가 먼 것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제 이 용어는 디지털에서 기술의 힘을 통해 팬덤 내 정당성을 느끼도록 돕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히 어떻게 하면 돈을 지불하게 할까를 넘어 어떻게 하면 팬들이 당당해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라는 정당한 관심을 심는 씨앗으로서의 진정성이 얼마나 상업적 성장에 있어 중요한지를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매개를 통한 진정성 변화의 의미와 가치를 다른 업계에서도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앞으로의 브랜드 마케팅의 상업화에 있어 이보다 더 진정성 있는 사례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