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디지털경제연합·ICT대연합 등 산업군을 대표하는 총 37개 협·단체가 인공지능(AI) 기술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정책지원 필요성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글로벌 선진국들은 AI를 경제·산업뿐 아니라 기술패권 및 국가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주요기술로 지정하고 핵심전략기술로 육성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22년 8월 '반도체와 과학법'에서 AI를 10대 핵심기술로 지정했다. 중국은 2021년 3월 디지털 중국 천명을 통해 AI를 7대 중점산업으로 지정하며 오래 전부터 정부차원의 대규모 정책지원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독자적 초거대AI를 보유한 4개국(미국·중국·한국·이스라엘) 중 하나지만 아직 미·중 등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큰 상황이다. 특히 AI 산업은 정부 지원과 민간의 투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민간투자분야 글로벌 지수는 18위로 매우 열악하다.
오픈AI는 모델 고도화에만 약 13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없다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내 기업의 자발적이고 도전적인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결국 기업의 재무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정부의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에도 KT, 네이버, 카카오 등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이 있지만 메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해외 빅테크 기업들은 GPU 자원만 수십조원씩 들여 모델을 만들기 때문에 성능 차이가 클 수 있다. 결국 AI는 자본 집약적이면서 언어장벽이 없어 전 세계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기술로 볼 수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한국시장 공략이 본격화되기 전, 경쟁력 있는 AI 개발과 관련 시장 및 생태계를 창출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AI는 경제성장 못지않게 국가안보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세계 각국은 소버린 AI(데이터주권)를 적극 추진 중에 있다. 이는 AI 서비스 필수 기반 인프라인 서버와 데이터센터가 해외에 있을 경우 해당 국가 정부에 의한 압류 및 감시가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한국 경우 해외에 서버와 데이터센터를 둔 글로벌 빅테크의 독과점이 심화되고 있어 국가 산업 및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 투자 확대는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국가전략 성과 창출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120대 국정과제 중 47개 과제가 AI 활용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AI는 디지털플랫폼정부, 미래전략산업(반도체·AI·배터리 등) 초격차, K클라우드 등 핵심 국정과제 달성을 위한 필수 기술이다.
정부는 조세특례제한법과 국가전략기술육성법에 의거해 AI 기술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민간의 적극적 투자를 확대 유인하려면 보다 획기적이고 과감한 정책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세특례제한법에서는 AI를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해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서는 20~40%, 시설투자에 대해서는 3~12% 세액공제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사 위주로 적용하고 있어 정작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인프라 투자는 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다. AI 서비스를 위해서는 대규모 정보통신자원에 대한 천문학적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데,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돼 있음에도 일반 공제(1%)만 적용받고 있다.
지금이 국내 민간의 과감한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정책의 골든타임이다. 더 이상 늦어진다면 장기적으로 미국 또는 중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에 AI 기술 및 AI 서비스를 위한 인프라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구축된 인프라를 전체 AI 관련 기업의 9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활용하는 등 건강하고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시작은 조세특례제한법상 AI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격상하고, 그 기술과 관련된 제조시설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위한 인프라 투자까지도 시설투자로 확대하는 것이다.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고도화된 차세대 AI 기술이 전 분야에 접목돼 생산성 혁신과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이끌 것을 기대해본다.
홍민 순천향대학교 SW융합대학장 mhong@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