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방사성 폐수가 맑아진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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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에너지는 인류의 차세대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오랫동안 주목받아 왔다. 기후변화 및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위기 등의 경고 속에서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계 주요국가가 원자력에너지 관련 차세대 기술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다만 원자력에너지는 방사성 폐수 처리를 잘못하면 치명적 위험을 야기하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과 같이 방사성 폐수 방출로 이어지는 대규모 사고는 환경 위험을 초래하면서 에너지 공급 차질과 동시에 인류를 위협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면서도 경제적인 방법으로 방사성 폐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처리공정 개발에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윤지호 한국해양대 교수와 차민준 강원대 교수 연구팀은 최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및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공동으로 방사성 폐수로부터 방사성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동시에 깨끗한 물을 회수할 수 있는 가스하이드레이트 기반 담수화 기술을 개발했다.

원자력에너지를 위한 우라늄 핵분열 과정에서는 방사성 동위원소 세슘과 스트론튬이 부산물로 발생한다.

이들 부산물의 방사성 원소 양이 절반까지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각각 30.2년과 28.9년에 달하며, 높은 수용성과 이동성을 지니기 때문에 생물체에 의해 쉽게 동화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부산물은 인간과 생태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이처럼 원자력에너지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방사성 폐수는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처리가 필수적인데 여기에는 복잡한 공정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일본의 경우 후쿠시마 오염수 정화에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활용, 62종의 방사성 핵종을 제거하는 공정을 진행한다. 공정 소화를 위해 2대의 침전타워시설과 14대의 흡착타워시설이 활용되지만, 정화 공정 이후 슬러지 및 침전물과 같은 2차 폐기물이 대량 발생한다.

연구팀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면서도 경제적인 방법으로 방사성 폐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물질 및 공정 개발을 위해 가스하이드레이트에 주목했다.

가스하이드레이트는 물과 가스가 결합된 화합물로 수소 결합으로 연결돼 있는 물 분자의 비어있는 공간에 작은 객체 분자가 포접돼 있는 고체 물질이다.

연구팀은 천연가스가 얼음 형태로 된 물질인 가스하이드레이트 결정체가 어는 과정에서 오염물이 배제되는 원리에 착안, 방사성 폐수 속에 가스하이드레이트가 존재할 수 있는 온도와 압력의 영역을 조사하고, 방사성 이온이 가스하이드레이트 동공에 포접되지 않는 이온 배척 현상을 고체 자기공명 분광법을 이용해 규명해 냈다.

방사성 폐수로부터 방사성 이온 제거와 담수 회수를 위한 가스하이드레이트 기반 담수화 기술 공정. 한국연구재단 제공
방사성 폐수로부터 방사성 이온 제거와 담수 회수를 위한 가스하이드레이트 기반 담수화 기술 공정. 한국연구재단 제공

이렇게 개발한 가스하이드레이트 기반 담수화 기술공정에 의해 95~99%의 제거율로 세슘과 스트론튬 등 방사성 이온의 분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개발한 공정이 물과 저분자 가스와 같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함께 간단한 공정 단계, 온도 및 압력 조건에 의해 작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산업에 적용이 가능한 것은 물론 대규모 방사성 폐수 처리에 간단하고 효율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원자력 발전으로 발생하는 방사성 폐수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며, 향후 원전 해체에 따라 확보돼야 하는 해체 특수폐기물 처리 기술 개발 및 원전 해체 산업 기반 마련의 초석까지도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수의 방사성 물질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환경과 인간에 대한 잠재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 체계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화공·환경분야 국제학술지인 케미칼 엔지니어링 저널, 저널 오브 헤저더스 머티리얼즈, 인바이런멘탈 사이언스·테크놀로지에 게재됐으며, 인바이런멘탈 사이언스·테크놀로지에는 그 중요성과 혁신성이 인정돼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윤지호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물과 저분자 가스와 같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함께 간단한 공정 단계에 의해 작동이 가능하다”며 “차후 원전 해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수 처리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