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 총리가 “끔찍하고 악의적”이라고 분노하며 태워버리기까지 한 그의 초상화 습작이 경매에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 화가 그레이엄 서덜랜드가 그린 처칠의 초상화 습작이 6월 6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다. 경매사의 예상 낙찰가는 50만~80만 파운드(약 8억 6100만~13억 7800만원)다.
영국 의회가 1954년 11월 처칠 총리의 80번째 생일을 기념해 당대 유명 화가인 서덜랜드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서덜랜드는 처칠의 저택에서 몇 개월간 작업하며 최종 작품을 위해 스케치와 유화 습작 여러 점을 만들었고, 이번 경매에 등장한 습작도 이 중 하나다.
서덜랜드와 처칠은 초상화 의뢰 때문에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당시 처칠은 서덜랜드에게 “나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천사? 불도그?”라고 물었던 일화가 유명하다. 불도그는 당시 그의 외모와 기질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이에 서덜랜드는 “당신이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답했으며, 처칠은 초지일관 '불도그'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처칠은 서덜랜드에게 초상화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가 번번히 거절당했지만 친구가 됐다. 고대하던 작품이 완성되자 처칠은 제막식 전 완성본을 봤는데, 우울하고 노쇠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에 크게 화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제막식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서덜랜드에 으름장을 놨다. 결국 제막식에 참석했지만, 의원들 앞에서 이 초상화가 “현대미술의 놀라운 예”라고 비꼬기도 했다.
초상화는 당초 의회에 걸릴 예정이었으나 처칠의 분노를 사 그의 자택 지하실로 옮겨졌다. 한밤중에 비서의 동생이 이를 정원으로 가지고 나가 처칠의 아내 클레멘타인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다.
경매에 부쳐진 습작은 서덜랜드가 미술상 앨프리드 헥트에게 준 것이다. 헥트가 이를 소장했다가 현재 소유주에게 물려줬다. 이 습작을 처칠이 생전 보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습작은 6월 경매에 나오기 전, 처칠이 태어난 것으로 유명한 옥스퍼드셔주의 블렌하임 궁전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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