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 '국민께 죄송하다'며 국정 쇄신 의지를 밝혔으나, 첫 단추인 인적 쇄신부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사의를 표명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인선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22대 총선 당일인 10일부터 17일까지 8일 중 6일을 공식일정 없이 장고의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14일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긴급 경제·안보 회의를 주재한 것을 제외하면 공개일정은 16일 국무회의가 유일하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고, 앞으로 대통령인 저부터 소통을 더 많이, 더 잘해 나가겠다”고 국민께 사과했다.
17일에는 비공개 일정도 잡지 않고 국정 쇄신을 위한 인사카드를 들여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사의를 표명한 고위직 인사는 한 총리와 이 실장을 비롯해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 박춘섭 경제수석, 장상윤 사회수석, 박상욱 과학기술수석 등이다. 윤 대통령은 아직 이들의 사의도 공식 수리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선 후임 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등에 대한 세평이 줄을 잇고 있다. 국무총리에는 주호영·권영세 국민의힘 의원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장에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정진석·장제원, 박민식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거론된다. 김부겸·박영선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도 각각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올랐다.
다만 박영선 국무총리-양정철 대통령비서실장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대통령실은 언론공지를 통해 “검토된 바 없다”라고 부인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언론인 회칼 테러 논란'을 일으키며 사퇴한 시민사회수석실(황상무 전 KBS 앵커)을 없애고 민정수석실을 부활하는 방향과, 정무특임장관을 신설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역시 복수의 대통령실 참모들은 일제히 부인했다.
대통령실 참모진과 달리 거대 야당 협조가 필요한 국무총리 인선은 22대 국회가 시작되는 5월 말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높다. 또 국무총리와 달리 대통령비서실장은 야당 협조 없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지만 현역 의원이 겸직할 수 없기 때문에 후보군이 제한적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수많은 세평과 쇄신 방향에 대한 예측은 결국 윤 대통령이 모든 카드를 열어두고 고심 중이라는 뜻”이라며 “급할수록 야당에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 (윤 대통령의 결단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