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부터 대학을 포함해 우리 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는 뜨거운 주제가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AI는 2010년대 중반 들어 신경망과 기계학습(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시작됐지만, 학습모델의 더딘 발전과 학습 자료 부족 등의 문제로 단기간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기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챗GPT 공개 이후, AI는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인공지능연구소가 발간한 'AI 인덱스 2024'에 따르면, 영어 이해도, 이미지 분류, 시각적 추론 등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이미 인간을 뛰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AI가 인류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발전해 인류를 통제하거나 적으로 간주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다. 컴퓨터나 AI의 발전이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은 영화 '터미네이터(1984)'나 '매트릭스(1993)'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터미네이터는 모든 전략무기의 통제권을 가진 '스카이넷'이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의 절반 이상을 절멸시킨 이후의 세계가 배경이고, 매트릭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를 가상현실에 가두어 신체가 발산하는 열과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암울한 세계가 배경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 상황은 어떨까? 이런 측면에서 영화 '듄(Dune)'의 세계관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 듄은 컴퓨터와 AI, 생각하는 기계, 의식을 가진 로봇 등을 거부하는 '버틀레리안 지하드(Vurtlarian Jihard)'를 배경으로 한다. 미래판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제국이라는 시대 배경에선 기존 SF영화처럼 우주선이 행성을 오가고 첨단무기로 싸워야 할 것 같지만, 이와는 상반되게 듄에서는 칼로 대부분의 전투를 치른다. '버틀레리안 지하드'를 통해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나 AI의 활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가 컴퓨터나 AI 등에 지배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듄은 컴퓨터나 AI 등의 기술을 거부하고 다시 사람 중심의 세계로 회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의 배경도 배경이지만, 이러한 영화나 소설이 서구 사회에서 나왔던 시기다. 소설 듄의 1부가 출간된 것이 1965년이다. 이보다 앞서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는 로봇이 반드시 지켜야 할 '로봇 3원칙'(the Three Laws of Robotics)을 1942년에 제시했다. 이것은 이미 서구 사회가 1940년대부터 컴퓨터, AI, 로봇 등이 가져올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모두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도 AI의 통제 가능성이나 실제 위협 요인 등에 대한 고민은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AI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온통 AI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쪽에 집중돼 있다. AI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발전시킬지, 어떤 경제적인 영향을 가져올지 등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하겠지만, 어떻게 활용하지, 무엇은 허용하고 무엇은 금지시킬지,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민간기업에서 개발하는 AI를 어떻게 통제할지, 인류를 뛰어넘어 공상영화 속의 디스토피아를 막기 위한 장치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등에 대해서도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런 고민을 지금부터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래에도 선도형 국가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 추격형 국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당장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서구사회보다는 80여년 이상 늦었다. 과학자들은 수년 내에 AI가 인간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한다. 죽고 태어나고 배우는 반복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인간에 비해, 그런 과정이 필요 없는 AI가 조만간 인간을 추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우리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상상력도 많이 빈곤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에서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됐다.
김윤식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yunshik@g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