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에서 분당, 일산 등 조성한지 30년 넘은 신도시와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는 단연 재건축이 화두였다.
경기도 한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는 공공기여 비율 축소, 재건축 1+1 입주권 제도 활성화, 재건축 주민 동의 전산화 도입, 노후계획도시 특별회계 6000억원 조성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에 질세라 다른 후보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기부채납 비율 완화, 재건축 1+1 중과세 폐지, 세입자 우선청약권 도입 등을 부르짖었다. 이제 당선인은 자신이 시민에게 자신이 약속한 바를 지켜야 하는 때에 이르렀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재건축 과정은 평균 10년 이상 소요되며 절차도 매우 복잡하다. 첫째, 기본 계획 수립단계에서는 안전진단과 정비계획 수립을 통해 사업의 기본 방향과 규모, 용적률 등을 결정하는데 보통 여기에만 수년이 소요된다. 둘째, 조합설립 및 사업시행 단계에서는 추진위원회 구성, 조합설립, 사업시행 인가 등이 포함되는 데 보통 이 두 번째 단계에서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된다고 한다. 셋째, 관리 처분 및 착공단계에서는 관리처분 계획인가, 이주 및 철거, 착공 및 분양 등을 거치게 되는데 관리처분 계획인가가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준공 및 입주단계를 거쳐 재건축은 마무리된다.
최근 수년 사이에 많이 오른 공사비 때문에 재건축 조합과 건설사가 공사비 전쟁을 벌이며 소모적 갈등을 벌이는 일까지 잦아졌다. 이러한 갈등까지 시작되면 10년을 바라보고 시작한 재건축이 기약없이 지체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런데 필자는 얼마 전 주택담보대출을 더 싼 이자로 갈아타기 위해 금융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수십개 금융기관의 이자율을 한 번에 살펴본 적이 있었다. 평소 믿을만하다고 생각해온 A은행의 이자율을 클릭하니, 자동으로 그 은행 앱으로 연결됐다. 그 다음부터는 화면상에 자동으로 로딩되는 온갖 문서와 약관을 보면서 계속 클릭하다 보니 순식간에 대환대출이 완료돼 버렸다. 어떠한 서류도 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앱이 해당 공문서를 발급하는 기관에 접속해 자동으로 관련 내용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경험한 행정간소화 서비스 중에서 최고였다.
알고보니 금융위원회가 올해 1월부터 본격 운영해온 주택담보대출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 인프라 덕분이었다. 이전에는 대출이든 대환대출이든 철저히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 위주의 프로세스였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은행이 갖다 달라고 하는 서류를 일일이 떼기 위해 많은 발품을 팔아야 했다. 이자율 비교하는 단계부터 그랬다. 금융기관도 대출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내는데도 말이다.
40대에 시작해 60대에 입주하면 다행이라는 재건축 프로세스도 관련 당국과 민간의 협조가 있다면 충분히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 동의가 필요한 절차는 온라인 간편인증과 온라인 투표를 결합하면 된다. 서류도 이제는 직접 뗄 필요가 없다. 재건축 진행 과정에서도 주요 원자재와 인건비 현황을 비슷한 규모의 타 재건축, 신축 단지와 실시간 비교하게 해 준다면 비용을 둘러싼 시비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공사 자재의 KS인증 여부와 재건축 관련 인원의 신원조회도 온라인으로 검증가능할 것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모든 인허가와 주민동의 절차를 통합관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막힌 부분을 자동으로 관련 이해당사자에게 공유하고 해결책까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시민에게 고통을 주는 절차는 AI와 함께 혁신할 필요가 있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