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오랑우탄이 얼굴에 상처를 입자, 치료 효과가 있는 약초를 씹어 상처위에 붙이는 모습이 포착돼 놀라움을 주고 있다.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독일 막스 플랑크 동물 행동 연구소는 3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인도네시아 국립공원에 사는 야생 오랑우탄 '라쿠스'(수마트라 오랑우탄 종; 수컷)가 얼굴에 큰 상처를 입자 약초를 씹어 상처에 반복적으로 문지르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라쿠스가 사용한 식물은 '아카르 쿠닝'(Akar Kuning). 동남아시아 열대림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로, 진통, 해열, 이뇨 효과가 있어 전통 의학에서는 이를 이질이나 당뇨병, 말라리아 치료 등에 활용했다. 항균, 항염증, 항진균, 항산화 성분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수마트라섬의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에서 오랑우탄 연구를 진행하던 지난 2022년 6월, 라쿠스가 약초를 이용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당시 라쿠스는 다른 수컷 오랑우탄과 싸우다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를 오른쪽 눈 아랫쪽에 가지고 있었다. 라쿠스는 인근에서 아카르 쿠닝을 찾아 씹어서 즙을 만들어 상처에 반복적으로 발랐고, 약초를 30분 이상 씹어 먹기도 했다.
연구팀은 라쿠스가 다른 부위가 아닌 상처 부위에만 집중적이고 반복적으로 즙을 발랐다는 점에서 '치료 의도'가 있다고 파악했다. 실제로 며칠 후 상처 부위가 감염 없이 아무는 모습도 확인됐다. 약 한달 뒤에는 완전히 나았다.
이전에 오랑우탄이나 흰손긴팔원숭이 등 유인원이 약초를 찾아 먹거나 생 잎을 털에 문지르는 장면이 포착된 적은 있으나, 이처럼 즙을 내어 상처 부위에만 바르는 '치료' 목적의 행동은 관측된 바가 없다.
연구진은 라쿠스가 약초를 사용하게 된 이유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먼저 우연한 계기로 이를 확인한 경우다. 식물을 먹이로 먹다가 실수로 상처를 만졌고, 당시 진통 완화 효과를 봐서 반복적인 행동을 하게 됐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지역의 다른 오랑우탄들로부터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배웠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논문 주요 저자인 이사벨 라우머 박사 후 연구원은 “이번 발견은 인간과 오랑우탄이 같은 조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