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바이오 업계 투자 상황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많은 지인들로부터 미국 바이오 투자 현황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펀드 레이징이 계속 어렵다 보니 많은 국내 바이오 테크들이 미국 현지 벤처캐피털(VC)로부터 직접 투자 유치하려는 시도로 알고 있다.
2013년부터 10여년간 보스턴 현지에서 바이오 벤처 투자를 직접 경험해 온 필자는 바이오 벤처 투자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전하고 최근 목격된 현지 동향과 해외 투자유치를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 기고를 통해 향후 미국 현지 투자 유치를 통해 해외 진출(globalization)을 희망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바이오 산업만큼이나 해외 진출에 적합한 산업이 없지 않나 싶다. 바이오 산업은 기반 기술인 '과학(science)' 자체가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그 과학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투자자그룹과 잘 연결될 수 있다면 성공적인 해외진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여러 바이오 테크들이 개발 초기 단계임에도 글로벌 파트너링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에 따라 우리가 개발 중인 신약물질(drug asset) 즉, 핵심 과학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검증 데이터가 세계적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월등한 실력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접촉해 올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최근 들어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기술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몇몇 글로벌 파마가 연구개발(R&D) 센터를 한국에 신설하거나 정기적인 R&D 행사를 개최해 국내 바이오 테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려는 움직임을 보면 이런 흐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더군다나 1년여 전부터 국내 바이오 테크들이 글로벌 파마와 라이선싱 딜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례가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글로벌 파마나 해외 VC가 국내 바이오 테크 현황을 필자에게 직접 문의해 오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적인 투자유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 현지 R&D 개발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R&D 개발 동향은 수시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가 중점을 두고 있는 기술이 미국 현지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글로벌 투자자에게 얼마나 잘 어필될 수 있을 것인지를 먼저 가늠해 보자. 또, 글로벌 투자자라 하면 엔젤투자자, 초기단계(early stage) VC, 기업형VC(CVC), 크로스오버펀드(crossover fund), 성장&메자닌 펀드(growth & mezzanine fund) 등 다양한 형태의 투자자 그룹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 회사 성장 단계별로 어떤 투자자들과 협력하는 것이 맞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우리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 내용과 개발 성과들을 글로벌 투자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와 더불어 이사회 중심 경영체제, 나스닥 시장의 특이점 등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경우 고려해야 하는 요소를 사전 숙지해보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개발 초기 단계 부터라도 세계적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위에 열거된 요소들 외에도 각 회사 상황에 따라 별도로 고려돼야 할 사항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방법으로 보스턴 현지에는 성공적인 성장을 이뤄낸 바이오 테크가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회사별 성공스토리를 우선 벤치마킹한 후, 우리 회사에 맞는 전략을 세워 보기를 추천한다.
얼마 전 글로벌 파마의 CVC 임원은 “한국에서 높은 수준의 신약개발 연구가 활발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러한 기술을 선점해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필자에게 귀띔해 준 적이 있다. 이렇듯 한국 바이오가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대부분의 국내 VC들이 바이오 투자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시기에 오히려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바이오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도약의 기회로 삼아 'K바이오' 브랜드 입지가 세계 무대에서 더욱더 공고해지길 바란다. 한국에서 시작된 연구가 휴미라(Humira)나 키트루다(Keytruda)와 같은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완성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자. 이는 한국이 반도체에서 일궈낸 성공만큼이나 값진 일이 아닐까?
윤동민 솔라스타벤처스 대표·한국스케일업팁스협회 자문위원 derek@solasta-ventur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