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급종합병원부터 공공병원, 전문병원까지 역할 재정립에 나선다. 붕괴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잡고 필수·지역 의료 강화를 위한 조치다.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병원별 기능을 확립하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 의료개혁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8일 정부 기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 전문병원 기능·지정 요건 등 재정립과 함께 공공병원 경영혁신, 역할 정립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먼저 복지부는 지난달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체계 개선방안 마련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 중 최상위에 위치한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희귀질환 등 고위험군 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곳이다. 복지부는 1기(2012~2014년) 지정 이후 10년 이상 평가체계가 유지된 만큼 의료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질병군 중증도 개편 등을 통해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한 상급종합병원의 새로운 역할 정립과 수도권 쏠림현상 해소를 위한 진료권역별 세분화 전략 등을 도출할 계획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전문병원 지정평가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전문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병원급 의료기관 중 특정 진료과목이나 특정 질환 등에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하는 병원을 지정한다. 현재 19개 분야, 109개 기관이 운영 중이다.
심평원은 전문병원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지만 병원 수도 정체돼 있을뿐더러 영역도 척추·관절 등 특정 분야에 집중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소아과, 수지접합, 화상 등 지정 기관 수가 적은 영역의 지정 확대를 포함해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해소하는 역할 수행 방안 등을 강구할 방침이다.
동시에 공공병원 경영혁신 방안과 기능 확립 전략도 수립 중이다. 지방의료원 35개소와 적십자병원 6개소 등 41개 공공병원은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지역 거점 의료기관으로 감염병 대응 최전선에 있었지만, 지속된 경영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지부는 이들이 수립한 경영혁신안을 토대로 이행 컨설팅 등을 지원, 경영 개선과 자립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의료전달체계 내에서 공공병원 기능과 역할을 새로 정립한다는 방침이다. 지역 내 필수의료 거점으로서 역할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정책, 재정적 사안을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공공병원, 전문병원 역할을 연이어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의료개혁 추진 일환이다. 정부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강화를 기치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해소와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를 확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을 중증·희귀질환 치료를 전담하도록 역할을 정립하고, 공공병원과 전문병원을 강화해 환자를 분산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를 위해 공공병원, 전문병원을 대상으로 간호인력 등 기존 상급종합병원 수준으로 지원하겠다는 정책도 발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필수, 지역 의료 강화를 핵심으로 한 의료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면 기존 공공, 전문 병원 역할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환자 치료를 최우선으로 하되 미래 의료 환경에 대비한 역할과 기능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