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자동차 공룡 '토요타'의 반격이 시작됐다.
토요타는 2023 사업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에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토요타의 지난 해 영업이익은 5조3529억엔(약 47조원)으로 전년보다 96.4% 늘었다. 5조엔대 영업이익은 역대 최대이자 일본 기업을 통틀어 처음이다. 같은 기간 매출도 역대 최대인 45조953억엔(약 396조원)으로 전년보다 21.4% 증가했다.
하이브리드차 판매 호조에 엔화 약세에 따른 환율 효과가 주 원인이다. 25년 전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양산차 프리우스를 선보이며 시장을 개척한 토요타는 지난 회계연도에 판매한 1030만대의 자동차 중 3분의 1 이상을 하이브리드차로 채우며 세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토요타는 지난 수년간 전기차 올인 전략을 취했던 경쟁사들과 달리 오랜 기간 쌓아온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제품 전략을 고수해 왔다. 토요타의 보수적 전동화 전환에 비판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차 성장 정체가 심화하자 토요타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대급 호실적에도 사토 고지 토요타 최고경영자(CEO)는 올해부터 수익이 오히려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해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며 전년보다 낮은 수익성을 기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요타가 제시한 2024 사업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매출은 2.0% 증가한 46조엔(약 404조원), 영업이익이 19.7% 감소한 4조3000억엔(약 37조8000억원)이다.
토요타가 올해 실적 전망치를 낮춰 잡은 것은 올해부터 미래차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토요타는 올해부터 전기차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 등 미래 성장 분야에 지난해 영업이익의 31%에 달하는 1조7000억엔(약 15조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이같은 대규모 투자 발표는 잠잠했던 토요타의 모빌리티 투자가 본격화되는 시그널이다. 가파르게 성장 중인 중국 경쟁사들을 규모의 경제와 탄탄한 수익성을 바탕으로 제압하며 '게임 체인저'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토요타의 모빌리티 투자 본격화가 두려운 것은 그들의 치밀함과 신중함 때문이다. 토요타는 한 국가에 진출할 때 단기간 수익에 집착하지 않고, 수십 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사업 계획을 세워 접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치밀한 경영 전략은 토요타가 수많은 국가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밑바탕이다.
지난해 토요타가 판매한 순수 전기차는 전체 판매량의 1%에 불과한 11만6500대에 그쳤다. 목표치인 20만2000대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올해 회계연도에는 17만1000대의 순수 전기차를 판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사들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생산 공장의 볼륨을 줄이는 사이 출사표를 내민 토요타의 전기차 왕좌 도전은 시장에 큰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전기차 전환을 최대한 늦추면서 자금력을 갖춘 토요타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전폭적 투자를 단행한다면 천문학적 비용이 요구되는 미래차 전환에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토요타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넘어서야 할 산이다. 그들의 전략을 꼼꼼히 살피며 함께할 수 있다면 협력하고, 배울 점이 있다면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미래차 패권 경쟁은 지금 다시 시작이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