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당시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산다는 말이 있었다. 도쿄 긴자의 땅 한 평 가격이 30억원에 육박했으니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며 주식과 부동산가격이 폭락했고 무려 1경6500조원의 자산이 증발했다. 이 기간 경제성장율은 '0'에 머물렀고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의미의 잃어버린 10년이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직면하며 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전후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거 창업했던 단카이 세대의 본격 은퇴와 가업승계기피로 수많은 기업이 줄도산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5년까지 127만개 기업 도산, 650만명 실직, 22조엔의 GDP손실을 추정했고 실제 2009년부터 5년간 80만개 기업이 폐업했다. 10년을 훌쩍 넘어 잃어버린 30년이 되었다.
지난달 29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정부가 '중소기업 기업승계 특별법'을 만든다고 한다. '가족승계'가 아닌 '기업승계' 즉 인수합병(M&A)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민은 이렇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30년 이상의 중소기업 중 81%는 고령 CEO가 이끌고 있고 후계자를 찾기 어렵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급격한 고령화와 후계 세습문제로 향후 10년, 33만개 기업피해, 307만명 실직, 994조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한다. 다양한 기회와 자기 진로가 명확한 요즘의 에코세대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기 보다 그 기업을 팔아 본인 일을 창업하기를 바란다.
기술보증기금의 역할도 눈에 띈다. 정책금융기관인 기보 안에 M&A플랫폼을 만들고 다양한 정부기관이나 민이 협동하여 M&A정보를 나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가령 당신이 수 백억원의 자산가라고 치자, 그 돈으로 강남에 빌딩을 사겠는가, 듣보잡의 중소기업을 인수하겠는가, 중소기업은 오너 리스크가 강해 한순간에 빈 껍데기가 될 수 있다. 결국 동종의 시너지기업이나, 펄(pearl business) 목적의 상장사를 찾아야 하는데 심각한 정보 비대칭이 발생한다. M&A얼라이언스가 필요한 이유다.
M&A자금의 일부를 기보 보증으로 조달한다 것도 매우 훌륭하다. 메가 딜이나 상장사 M&A에 국한했던 M&A금융이 중소기업까지 확대된다면 시장확대에 결정적 트리거가 될 것이다. M&A중개기관의 등록제도 반갑다. 최소한의 진입장벽을 만들어 M&A업계의 질적 고도화를 이룰 것이다. 국내 M&A시장은 다단계식 중개구조, 허위매물, 선불요구 등 온통 부정적 인식뿐이고, 속칭 발로 뛰는 M&A가 성행하는 대표적인 아날로그분야다.
지난 컬럼에서 필자는 일본의 모노즈쿠리(장인문화)을 동아시아 변방의 오타쿠 문화라고 지적했다. 즉 가업승계가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 동아시아 5000년 역사상 대한민국의 국력이 일본에 못 미쳤던 시기는 근래 500여년에 불과했고, 이는 산업화에 일찌감치 나선 일본을 단기간 따라잡기 어려웠을 뿐이다. 그럼에도 현재는 어떤가, 전 세계 정보기술(IT)시장을 휩쓸었던 일본 대표기업 4곳 즉 소니, 히타치, 도시바, 파나소닉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 한곳에 미치지 못한다.
기업은 사회의 자산이다. 우리는 냉철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상속세 몇 푼을 깎아준다 한들 가업승계가 활발해지는 것이 아니다. 한편 상속세를 아예 면제한다면 부의세습이라는 또다른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예산을 앞서 보증기금 등에 출연해 M&A마중물로 쓰는 것이 휠씬 효과적일 것이다. 오랜만에 듣게 된 반가운 소식에 특별기고를 하게 되었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생각은 조약돌도 움직일 수 없다. 큰 틀은 정해졌으니 중소기업 실정에 맞는 섬세한 정책수립이 필요하다. 기타줄만 고쳐주고 연주는 할 수 없는 빈껍데기 입법은 아무 의미가 없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7년연속 과학기술서적 판매 1위를 이어가며 대학 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현재 세계 첫 비대면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