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식음료 브랜드인 스니커즈와 코카콜라보다 브랜드가 없는 초콜릿과 탄산음료가 소비자 마음을 휩쓴 슈퍼마켓이 있다. 독일에서 시작해 전 세계 18개국에 진출한 다국적 온·오프라인 슈퍼마켓 체인 '알디(Aldi)'다. 소비자 10명 중 8명(77.5%)이 알디의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구입하는 이곳에선 내로라하는 브랜드들도 고개를 숙인다. 일반 브랜드보다 30~40%씩 저렴한 강점으로 알디는 2022년 매출 402억달러(55조원)을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미국 전통의 트레이더 조·웨그먼스·코스트코의 PB상품 비중도 30%가 넘는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92%가 올해 PB상품을 산다고 응답했다. 이는 '저렴한 가격과 품질이 고물가의 대안으로 떠올랐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PB열풍이 불고 있다. 요즘 이마트를 방문하면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매장이 온통 노란색 물결로 물들어 있다. 저렴한 감자칩과 떡볶이 등으로 인기가 높은 '노브랜드' PB상품은 매출이 4~5배씩 오르는 마트 매대의 '골든존'에 집중 배치됐다. 홈플러스나 롯데마트, CU 등 편의점도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월 우리나라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물가 상승률은 6.95%로 OECD 평균(5.32%)을 넘어섰다. 35개 회원국 중 세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수출'보다 '고물가'로 선진국을 앞지를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얼마 전 마트를 찾아 “가성비 좋은 PB상품 등 대체상품 발굴에 힘써달라”고 했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니 일반 브랜드보다 저렴한 PB상품으로 '인플레 방파제'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PB상품을 권장하는 산업부와 달리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의 PB상품 우대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직원 리뷰로 값싼 PB상품을 밀어줬다는 주장이다. 쿠팡 측은 '유통업의 본질인 상품 진열을 규제하는 것은 공정위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반박문을 냈다. 직원이 체험단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이들의 상품평도 일반인 체험단과 비교해 평점이 낮다고도 항변했다.
공정위 조사와 전원회의 의결 절차가 남았지만 그 전에 생기는 의문은 'PB상품의 상단 진열이 소비자에게 해를 끼쳤을까'이다. 또 '과연 대형마트는 어떤 기준과 근거로 PB상품을 입구에 전면 배치할까'란 궁금증도 든다.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마트몰에서도 떡볶이나 오뎅, 맛살, 치킨 같은 키워드를 치면 PB상품을 검색창 상단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 입구에 PB상품을 전면 배치하는 것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검색으로 PB상품을 먼저 보여주는 것은 어떤 차이점도 없다. 따라서 공정위 조사 결과가 어떻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간의 'PB상품 역차별'은 없어야 한다.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고물가를 맞은 요즘 파격 할인가로 PB상품을 똑같이 먼저 보여주는 것이 공통의 전략으로 급부상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라 PB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들에게 혼란이 올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PB상품이 사랑받고 있고, PB 비중이 80%에 달하는 다국적 유통사도 '규제 리스크' 없이 영업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는 PB상품 진열 규제에 나선 반면, 산업부는 PB상품을 더 확대하라고 주문한다. 유통기업은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