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인 2012년, 여야는 몸싸움하는 국회 대신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며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동물국회'란 오명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2년 뒤 여당(당시 새누리당)이 야당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개정을 시도했다.
2016년, 원내 1당이 바뀌자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여야 입장은 180도로 바뀌었다. 결국 쟁점법안으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국회는 일 안 하는 국회로 전락했다.
2020년, 여야는 다시 '일하는 국회법'(국회선진화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 안 하는 국회를 막기 위해 월 2회 이상 상임위를 열고 월 3회 이상 소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또 해마다 3월과 5월 임시국회를 열어 상시국회를 제도화했다. 정쟁으로 국회가 공전할 때마다 민생·경제 법안의 심사가 연기되는 것을 타개해보자는 취지였다.
21대 국회가 이번주 막을 내린다. 의무적으로라도 회의를 열어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스스로 국회법을 개정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4년 임기 동안 법안 통과율은 36.5%(발의법안 2만5832건·가결법안 9454건)다. 가결된 법안 비율로 치면 역대 국회 중 최악의 성적표다. 물론 21대 국회에서 역대 어느 국회보다 법안 발의 건수가 많았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법안 발의 건수는 계속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법안 발의 수가 많았다는 점이 변명이 될 순 없다. 어떤 변명을 늘어놔도 21대 국회는 민생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22대 국회 임기가 30일 시작된다. 21대와는 다른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심지어 개원을 앞두고 제대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매번 공염불에 그쳤던 구호이긴 했지만, 그런 다짐조차 하지 않는 건 유권자에게 신뢰감과 실망감을 높이는 것이다.
28일 21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이 진행된다. 여기에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도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야당은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모두 22대 국회에서도 재발의하겠다고 선포했다. 21대 국회의 끝과 22대 국회의 시작은 '급랭전선'에 뒤덮였다.
'거부권 정국'의 무한반복이다.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수많은 민생 법안들을 22대에서 다시 발의하더라도 해당 법안의 처리는 또 다시 밀릴 수밖에 없다.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제대로된 정치를 보고 싶다. 정치 실종 탓에 경제, 외교, 민생과 관련된 주요 정책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다만 지금의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사실상 거대 야권의 의지에 성패가 걸렸다고도 볼 수 있다. 야권의 의지만 뚜렷하다면 민생 법안 처리는 충분히 가능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돌어오지 않길 바란다. 정쟁과는 별개로, 해야할 일은 해나가야 한다. 22대 국회 첫 시험대는 법정 시한이 정해진 '원 구성 협상'이다. 원 구성 협상까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유권자 실망은 더 커질 수 있음을 국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