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로부터 촉발된 현재의 인공지능(AI) 시대는 종종 서부 개척 시대(wild west period)에 비유되곤 한다. 약 170년 전 많은 사람들이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는 몇 가지 측면에서 현재와 많이 닮아 있다.
첫째, 서부 개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성공적인 삶을 이루고자 하는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장해 있었다. 둘째, 안정된 질서 없이 혼란스러운 무법 상황에서 총잡이, 카우보이, 보안관과 같은 다양한 페르소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셋째, 시대를 주도했던 주인공과 정작 이득을 본 사람이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세 번째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부 개척 시대에 골드러시로 인해 부를 축적한 이들은 금광을 찾아 나선 광산업자와 채굴꾼이 아니라 청바지를 팔던 상인이었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생성형 AI의 기초가 되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 모형을 개발한 구글이나 챗GPT를 만들어 AI의 대중화를 이끈 오픈AI도 있지만, 정작 가장 많은 돈을 번 기업은 엔비디아(Nvidia)다.
오픈AI, 앤쓰로픽, 미스트랄과 같은 생성형 AI 개발 기업들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 이들은 수익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엔비디아는 생성형 AI 개발에 필수 도구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통해 천문학적 수익을 거두고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번다'는 옛 속담과 맞아떨어지는 장면이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뛰어난 실적을 바탕으로 지난 달 22일 주당 1000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해 6월 4일 주가는 무려 1164달러에 달하고 있다. 작년 말 종가인 495달러에서 불과 5개월 만에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2.86조달러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4000조 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513조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전체 기업의 시가총액이 약 2200조원임을 감안하면 엔비디아가 얼마나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엔비디아가 이렇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수익성과 성장성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언어 모형(LLM)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엔비디아의 최신 GPU인 H100이 최소 수백~수천개가 필요하다. 그런데 H100의 가격은 개당 5500만원에 달하며, 이마저도 주문 후 11개월을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 고가임에도, 줄을 서도 못사는 제품인 것이다.
지난 해 마이크로소프트는 15만개에 달하는 H100을 구입했으며, 구매금액은 무려 6조원에 달한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세운 AI 스타트업인 xAI가 대규모 언어 모형 '그록3' 개발을 위해 10만개의 H100을 사용할 것이며, 이를 위해 60억달러(약 8조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국내 또한 마찬가지다. AI 가속기 생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 반도체의 최대 공급처인 SK하이닉스가 주목 받고 있다. 생성형 AI 개발에 필수적인 AI 가속기는 GPU와 HBM이 합쳐져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분야의 호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영업이익이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주가 역시 1년 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대한민국은 이미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강국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미국과 대만, 일본의 위협이 만만치 않기에 AI 시대에도 그 위상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AI 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생산하지만,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소재·부품·장비를 제조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이다. 이들은 고용창출 효과가 높으며, 수출 비중 또한 매우 높다. 더불어 AI 반도체 산업은 'X+AI'라 불리는 전통 산업과 AI를 연결하는 핵심고리가 될 수 있기에 국가 차원에서 타 산업에 대한 파급 효과가 높은 AI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학습용 반도체 시장에서 리벨리온, 사피온, 퓨리오사AI와 같은 유망한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이 등장해 기술력을 선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AI G3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 초석이 되는 AI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황보현우 홍콩과기대(HKUST) 겸임교수·전 하나금융지주 그룹데이터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