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일본, 영국 등 세계 각국은 플랫폼 규제를 본격 시행 중이다. 글로벌 빅테크 독과점을 방지해 자국 플랫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국내 플랫폼법 제정 논의가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며 글로벌 빅테크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토종 플랫폼은 안팎으로 고초를 겪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플랫폼 규제로 꼽히는 것은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이다. 올해 3월 7일부터 전면 시행된 규제로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과 공정경쟁을 강조한다. 알파벳, 아마존, 애플, 바이트댄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6개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했다.
DMA는 △자사 플랫폼과 제3자 서비스 간 상호 운용 허용 △특정 서비스를 운용하며 획득한 데이터의 결합·이전·광고 활용 금지 △경쟁업체 서비스보다 자사 서비스 상위 노출 금지 △자사 타 서비스에 이용자 동의 없는 개인 정보 활용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의무 불이행 시 연간 매출액의 최대 10%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반복적으로 규칙을 위반할 경우 과징금은 최대 20%까지 상향 조정된다. 아울러 EU 집행위가 해당 기업의 사업 부문 일부를 매각하도록 강제하는 등 강력한 제재도 취할 수 있다.
일본은 2020년 6월 '특정 디지털 플랫폼법'을 제정했다. 매출액 총액, 이용자수, 기타지표 등으로 특정디지털 플랫폼을 사전 지정하고 공시규제, 조치규제, 감독규제 등을 시행한다.
독일은 2021년 1월 경쟁제한방지법(GWB) 제 10차 개정을 통해 사전에 독과점 플랫폼을 경쟁당국이 지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기존 경쟁법 규범의 적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나 EU DMA가 적용되지 않는 사례에 대해 경쟁법의 특별규정으로써 보완 수단이 된다.
영국은 지난해 4월 '디지털시장을 위한 새 경쟁촉진 체계(안)'을 발의했다. 규제 대상은 전략적 시장지위가 있는 사업자로 지정된 기업이다. △차별·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제한 금지 △상호운영성 제한·이용자의 이용방식제한 금지 △불공정한 데이터 이용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온라인에서의 선택과 혁신법(안)'을 지난해 6월 재발의했다. △독과점 플랫폼의 차별적 취급에 대한 금지 △대상 플랫폼 사업자에게 입증책임 전환 △법원의 사업부문 매각 명령 가능 △경쟁당국의 임시 조치 등이 골자다.
주요국이 해외 플랫폼에 대해 장벽을 세우는 이유는 글로벌 빅테크의 독점 구조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미국 빅테크의 유럽 내 사업 규모는 지속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KCMI)의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대표적인 미국의 테크기업 규모 상위 7개 기업의 수익은 1조 7200억 달러에 달한 반면, 유럽의 테크기업 규모 상위 7개 기업 수익은 1330억 달러에 불과했다.
EU의 경우 DMA 상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6개 사업자 중 유럽을 기반으로 둔 사업자는 한곳도 없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플랫폼 시장 규제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시장 상황은 주요 플랫폼 규제 국가와는 다르다. 한국의 경우 온라인 검색, 메신저, e커머스 등 주요 디지털 플랫폼 시장 내 글로벌 빅테크와 유효하게 경쟁하고 있는 토종 플랫폼이 존재한다. 해외 플랫폼에 의해 디지털 시장이 지배되고 토종 플랫폼이 경쟁력을 상실한 EU의 상황과는 다르다. 소비자 행동적 특징 또한 타 규제 주요국과는 다르다.
박유리 KISD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전자상거래 등 경쟁이 활발한 영역이 존재하고 영향력 있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 중”이라며 “이용자 행태 또한 멀티호밍을 하거나 플랫폼이 사전에 정한 옵션을 능동적으로 바꿔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라인야후 사태로 번진 신보호무역주의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플랫폼이 몸집을 키우기 위해 글로벌 진출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디지털 주권, 안보에 대한 신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며 토종 플랫폼 입지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이같은 흐름 속 토종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유로운 시장 경쟁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최영근 상명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국내 플랫폼과 글로벌 플랫폼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경쟁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산업정책이 될 수 있고 플랫폼법안을 제정할 경우 자국 플랫폼의 성장과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