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회적, 경제적 혹은 사업적으로 변화가 큰 시기를 변곡점이라고 부른다. 사전적 의미의 변곡점은 변화하는 곡선의 모양이 오목에서 볼록, 혹은 그 반대로 바뀌는 지점이자 수학적으로 두 번 미분했을 때 0이 되는 지점을 의미한다. 국가나 기업, 혹은 한 개인의 인생은 수없이 많은 변곡점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놀라운 성장과 번영을 누릴 수도, 급격한 나락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지난 40년간 몇 차례의 큰 변곡점이 있었다.
1981년 IBM이 PC를 출시할 때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는 개인을 위한 컴퓨터 시장은 매우 협소하며 큰 실패를 할 것으로 보았지만, 당시 큰 이익을 내던 미니컴퓨터와 유닉스 회사들이 나락을 경험했다. 1995년 웹 브라우저가 빠르게 파급되면서 일반인에게도 인터넷 세상이 열렸다. 이때 창업한 아마존과 구글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고,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그러하다.
그런데, 이 무렵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AOL이나 야후는 어디에 갔으며, 네이버와 같은 작은 스타트업이 엄두내지 못할 투자를 한 유니텔과 채널아이, 천리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2009년 애플이 전작의 실패를 딛고 아이폰3를 출시했을 때, 세계적 휴대폰 제조사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직 삼성전자만이 큰 위기감으로 대응을 했다. 이 당시 세상을 호령하던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어디 갔으며,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이 어떤 결과를 맞이 했는지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우연일까? 1981, 1995, 2009, 그리고 2023 모두 14년 간격이다. 2023년은 우리에게 챗GPT, 미드저니 등으로 기억되는 초거대 인공지능(AI) 혹은 생성 AI의 위대한 변곡점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과거 30만년이 도구를 통해 나약한 인간의 근육을 증강해 세상을 지배해 왔다면, 이제 바야흐로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우리의 지능을 증강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변곡점에서는 항상 큰 위기와 함께 기회가 주어진다. 기존의 빅테크 및 거대 IT 기업에는 안정적인 사업부문의 포기와 근본부터의 혁신이 요구될 것이며, 새로운 비전과 열정으로 무장된 스타트업에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작년 초만해도 200명 밖에 되지 않던 오픈AI가 1000배나 큰 구글을 통째로 흔들어 놓고 있지 않은가? 지난 30년간 AI 연구와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필자도 그 변화의 물결에 현기증과 멀미가 날 정도다.
이 거대한 변곡점에서 우리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은 어떻게 생존하고 이 기회를 살려 번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우선 기존 사업의 수성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 기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LLM을 필두로 한 생성AI 사업은 근본적으로 언어의 경계가 없고, 많은 문서와 지식을 학습한 AI가 경쟁력을 가지기 때문에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물론 국내 스타트업 및 중소 SW 기업들도 외산AI 대항에 나서고 있다. 언어와 기업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기술 노하우와 축적데이터만 있다면 글로벌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두 번째, 공격적이고 엉뚱 발랄한 서비스의 발굴과 창의적인 사업모델을 끊임없이 실험해야 한다. 현재는 트랜스포머와 GPT를 중심으로 한 기술 주도의 변화 시장이고, 앞으로는 우리 삶과 밀착된 생활 서비스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과거 아마존과 구글의 사업모델이 그러했듯 어떤 방향이 정답이고 고객에게 받아들일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창대한 사업계획과 전략보다는 빠른 실행과 실패 경험에 기반한 피봇팅 및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 market fit)을 찾아가는 회복탄력성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실리콘 밸리의 자회사로 출장 온 필자는 젊은이들의 무모한 열정과 작은 스타트업의 도전을 보며, 거대 IT기업의 사활을 건 변신의 노력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생존을 넘어 번영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지는 날이다.
이경일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인력양성 및 일자리창출 위원회 위원장·솔트룩스 대표 tony@saltlu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