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정부의 얼굴

배춘환 법무법인 광장 고문
배춘환 법무법인 광장 고문

의식주(衣食住).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를 더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휴대폰이다. 끼니를 거르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휴대폰이 없으면 자칫 공황장애를 느끼는 이들도 있다고 할 정도다. 이런 필수품인 휴대폰을 구입할 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장 저렴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구입시기와 장소, 구매방식에 따라 가격차이가 크게 난다면 그로 인한 차별의 문제도 매우 중대할 수 밖에 없다.

통신사들의 판매장려금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지도는 이런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책 산물이다. 그러나,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사들의 행위를 담합 혐의로 조사하면서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과징금 규모가 3조~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는 언론 보도도 속출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방통위의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인데, 공정위가 이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분하려 한다며 억울해하고 있다.

공정위는 행정기관이 법령상 구체적 근거없이 사업자들의 합의를 유도하는 행정지도를 한 결과 발생한 부당한 공동행위는 위법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행정지도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강제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정위도 홈페이지에서 분명히 언급하고 있듯이 행정지도는 비구속성·비강제성을 개념요소로 하나 특정 권한을 함께 가지고 있는 행정기관의 행정지도는 사실상 구속적 효력이 있으며, 이런 행정지도를 사업자들이 임의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또, 공정위와 방통위는 정부 내에서는 다른 부처지만, 시장과 국민의 관점에서는 정부라는 하나의 얼굴이다. 행정지도는 방통위, 조사·처분은 공정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행위전체를 정부라는 한 주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행정지도를 해 놓고 그에 따른 행위를 정부가 또 위법으로 판단한다면, 정부와 시장 중 그 책임의 무게가 더 무거워야 하는 것은 어느 쪽인가?

정부의 지금 상황은 마치 마징가Z 캐릭터 아수라 백작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헬 박사가 미이라 반쪽씩을 붙여 만든 아수라 백작은 한 사람의 얼굴이 왼쪽은 여성, 오른쪽은 남성으로 반반씩 나뉘어있다.

행정의 모든 정책적 목표가 법규범과 같은 강제적 수단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층화·복잡화되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는 오히려 가이드라인 같은 다양하고 세분화된 행정지도가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연하고 효율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만약 정부의 행정지도가 시장의 신뢰를 잃을 때, 특히 그 신뢰상실의 원인을 정부 스스로가 제공한다면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게 될 혼란과 손실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번 사안의 경우의 공정위는 행정지도를 넘어선 통신사간 별도의 담합 혐의가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물론 통신사들의 행위가 담합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공정위 몫이 맞다. 그러나 통신사들의 행위가 행정지도 범위 안이냐 밖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은 행정지도 당사자인 방통위 판단이 고려돼야 한다. 각 부처의 다양한 행정지도와 관련된 시장의 행위 범위 모두를 공정위가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당사자인 통신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번 사안을 지켜보고 있다. 공정위도 방통위와 소통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 하니 정부 차원의 원만한 협의를 거쳐 책임있는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마징가Z의 아수라 백작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배춘환 법무법인 광장 고문 choonwhan.bae@leek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