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형병원들이 의정 갈등 여파로 올해 역점 사업을 줄줄이 중단하고 있다. 건물 신·증축, IT 인프라 교체 등 핵심 과제가 연이어 보류되면서 병원 경쟁력 약화는 물론 산업계 전반의 위축까지 우려된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국 주요 수련병원들은 최근 올해 역점 사업을 추진하던 프로젝트를 연이어 중단하고 있다.
최근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은 본관 증축과 재배치를 위한 기본계획 수립을 중단했다. 이 사업은 올해 착공 예정인 안심호흡기전문센터 잔여 용적률을 활용해 본관을 증축하고 시설을 재배치하기 위한 전략 수립이 목적으로, 지난 4월부터 사업자 선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보라매병원은 최근 사업을 돌연 중단했다. 병원 측은 발주처 내부 사정으로 사업 계획이 전면 취소됐다고 설명했다.
칠곡경북대병원도 최근 경북권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을 위한 컨설팅 사업자 선정 작업을 중단했다. 병원은 2021년 경북권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선정됐는데, 사업 규모가 예비타당성조사 기준에 부합하면서 사업 계획을 재조정하는 컨설팅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특히 이 사업은 총 700억원이 넘게 투입되는 대형 사업인데다 지역거점 감염병전문병원으로 도약 계기로 삼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칠곡경북대병원 관계자는 “사업 예산과 방향, 세부 사항 등을 수립하기 위해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현재 입찰을 취소한 상황”이라며 “의정 갈등 심화로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사업도 잠시 중단했다”고 말했다.
올해 추진하려던 대형 IT 프로젝트도 차질을 빚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올해 역점사업으로 설정한 커맨드센터 구축사업도 지연되고 있다. 이 사업은 병원 내 분산된 IT 조직을 모아 미래 IT 혁신 전략 수립과 원내 IT 자원 관리를 맡을 센터 구축이 핵심이다. 부산대병원은 올해 300억~500억원 가량 투입해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을 구축키로 했지만 아직 사업공고도 내지 않았다. 1분기 내 공고가 예상됐지만, 계속 미뤄지면서 상반기도 불투명한 상태다.
IT 업계 관계자는 “1분기 입찰공고를 예상했지만 계속 미뤄지다 발주처에선 6~7월경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면서 “하지만 최근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확대되면서 연말쯤에야 입찰공고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114일째를 지나고, 전국 수련병원 의대 교수는 물론 개원의까지 집단 진료거부에 동참하면서 의정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해 입원, 수술이 평시대비 30~50% 가량 줄어든 병원 입장에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역점사업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제는 병원이 제때 투자를 못 하면서 경쟁력 약화는 물론 산업계도 덩달아 악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병원 내 의료기기, 시스템, 각종 설비 등 납품이 줄줄이 미뤄지면서 올해 사업 계획까지 전면 수정하고 있다.
의료 AI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받은 AI 의료기기가 나오면서 올해 병원에 본격 도입이 예상됐다”면서 “연초부터 적극적으로 영업해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었는데, 의정갈등으로 인해 대부분 병원이 보류하면서 올해 영업 목표도 30% 이상 줄였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