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에게 어문학과는 인기가 없어요. 지원 학생이 큰 폭으로 줄고 있는 실정이에요.”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어문학과 교수의 말이다. 전통적인 언어 교육이 학생들로부터 멀어지는 듯 하다. 한때 영문학과, 중문학과 등은 인문사회계열에서 꽤 높은 인기학과였다. 그러나 이제 옛 말이 됐다.
덕성여대가 내년부터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기로 했다. 독문학과와 불문학과를 폐지하는 것이다. 서울 시내 대학권에서 어문계열 학과를 폐지하는 첫 사례다. 외국어 교육으로는 국내 최고 대학인 한국외국어대도 지난해와 올해, 글로벌(용인)캠퍼스 통번역대학의 일부학과 모집을 중단했다.
대학가에서 어문계열 학과 폐지는 전통적인 인문계열 학과 폐지의 서막으로 본다. 덕성여대가 독문학과와 불문학과를 폐지한 이유는 학생 선호도가 낮기 때문이다. 두 학과가 소속된 글로벌융합대학은 매년 530여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이후 2학년때 전공을 선택하는데 독문학과와 불문학과를 선택한 학생이 각 10명도 채 안된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학과 선택이 우리나라보다 유연한 세계 유수 대학 곳곳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미국 스탠퍼드대 입학생 2000여명 중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 학생은 700명 이상이다. 반면 전공 졸업생이 10명 미만인 학과도 많다. 프린스턴대 2020~2021학년도 건축학과 졸업생 수는 6명(0.53%), 천체물리학과 졸업생은 8명(0.71%)에 불과하다. 예일대도 물리학과 3명(0.27%), 인류학과 6명(0.53%)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어문계열이 인기 없는 이유는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있지만, 무엇보다 취업에 약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학과 선택 요소는 무엇보다 취업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인기있는 학과는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다. 인기가 높은 만큼 입결(입시결과, 누적 백분위를 바탕으로 형성된 합격생 성적)도 높다. 취업과 높은 연봉, 안정된 미래를 보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이공계 분야가 인기다. 의치한약수에 이어 취업과 미래를 보장해 주는 학과로 인식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 대학이 협약을 맺어 졸업 후 취업이 100% 보장되는 계약학과는 대부분 이공계학과다. 모든 분야에 AI 적용이 확대되면서, 관련 전공자 취업 영역이 넓어진것도 이공계 인기 비결이다.
대학의 자유학부제 확대도 어문계열 위기로 이어진다. 자유학부제는 신입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해, 1학년때는 전공을 탐색하고 2학년때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다. 대학은 입학정원 총원이 정해진 상황에서 자유전공학과 정원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 학과 인원을 줄여야 한다. 인기없는 어문계열 학과가 그 대상이 된다.
어문계열 학과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문계열 교수 사이에서 언어교육에 AI 등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가 이뤄진다. 1997년 설립된 한국멀티미디어언어교육학회 등이 대표적이다. 학회는 언어교육에 에듀테크를 적용한 서비스 및 교구 대상으로 인증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AI 등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을 언어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하자는 것이다.
또 하나 한국외대 ELLT(English Linguistics & Language Technology)학과가 있다. 1954년 한국외대 설립과 함께 개설된 영어학과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영어와 공학을 접목해 새롭게 탄생한 학과다. 영어구사 능력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언어학지식과 공학적 데이터 처리 능력을 학습해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 이 학과는 실제 인문사회계열 중심의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에서 가장 핫한 학과로 떠올랐다. 입결도 다른 학과 대비 상당히 높다.
한국멀티미디어언어교육학회의 활동과 한국외대 영어학과의 ELLT학과로의 변신 등은 급변하는 대학 환경에서 앞으로의 어문계열 대응 해법을 제시하는 것 아닐까 싶다.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