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단순히 연구개발(R&D)에 경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시기입니다. 정치권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엄중히 상황을 인식해 과학기술 혁신에 나서야 합니다. 전 부처가 협력해 새로운 과학기술 혁신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난해 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을 퇴직한 임덕순 박사의 말이다. 과학기술, 나아가 국가 전반의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 박사는 과학기술 정책 분야에서 30년 이상 활동한 인물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주로 활동해 국제기술전략센터장 등을 역임했고 지난해 말 퇴직했다.
2007~2013년에는 기관을 나와 활동하기도 했다.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 초대 기획실장,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초대 설립멤버로 전략기획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혁신클러스터 학회에도 초기부터 참여했다.
이런 그는 현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상황 인식부터 올바르지 않다고 했다. 환경이 크게 변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더딘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정부의 개입을 꺼렸던 미국조차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대로, 기술 확보 전쟁이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전시상황”이라며 “당장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 힘을 쏟아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고 빅테크와 정부차원 협력이 공고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예도 들었다. 임 박사는 “'느린 나라'로 정평이 난 일본도 2년 반만에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을 정도의 상황”이라며 “반면 우리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필요한 전기전력 공급, 인력 확보 등에 복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전시 상황으로 엄중한 상황인식 아래 한가로움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시스템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히 앞서 달리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도 했다. 주요국 대비 작은 규모가 한계점이 된다고 했다.
임 박사는 “시장 규모, 동원가능한 인적자원이 미국과 중국에 밀리는 우리는 그만큼 정밀하고 유연한 통합 국가전략 시스템으로 응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R&D에 고려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R&D를 활성화 할 산업정책, 연구 자금 회수 관련 금융정책, 지원을 위한 세제 정책 등 다양한 영역을 과학기술 혁신이라는 틀 안에 통합하지 않으면 혁신으로 연결할 수 없다”며 “산·학·연·관이 함께 나아가는 통합적인 '이니셔티브'를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R&D 법제 정비도 시급한 영역으로 제시했다. 임 박사는 “부처별 관련법이 난립하는데, 이는 부처별 상이한 해석을 부르게 된다”며 “이를 일관성 있게 정리해야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R&D 수행에 따른 보상을 강화하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과학자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행태는 이제 버려야 한다”며 “보상이 제대로 갈 때 성과가 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기업 지원도 고려사항이라고 했다. 임 박사는 “정서상 어렵지만 대기업 없이 기술패권 확보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인식을 바꿔 기업 지원을 과감히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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