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400억원 과징금을 부과받고, '로켓배송 중단'을 언급하자 '국민을 볼모로 잡겠다는 거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과징금 부과보다 로켓배송 중단에 더 큰 관심이 모아질 것을 뻔히 알았을텐데, 쿠팡은 왜 이런 비난을 불러 일으키며 과격하게 대응했을까.
아마도 10년간 쌓은 6조원 적자보다 공정위의 '상품 진열 제재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쿠팡이 아무리 로켓배송을 잘하고, 물류센터가 많아도 로켓배송 상품 추천에 제약이 걸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불확실성'이 로켓배송 중단 언급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공정위의 발표가 그대로 '시정명령'으로 반영되면 앞으로 판매량이 높고 개수가 많은 오픈마켓 상품이 쿠팡 앱 메인 화면 랭킹을 장식해야 하고, 로켓배송 상품은 가성비가 좋아도 판매량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우선 노출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익일·당일·새벽배송 때문에 쿠팡을 쓴다. 배송기한 2~3일에, 정품인지 중국산인지 모를 오픈마켓 상품이 판매량이 높다는 이유로 검색 상단에 뜨는 것을 반기는 소비자가 있을지 의문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의 로켓배송 직매입 상품만 600만개가 넘는다. 그런데 공정위가 일일이 'A상품은 위에, B상품은 아래에' 배치하라는 식으로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소비자 고지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알리는 것이 과연 '소비자 오인'이 아닌지 기준 마련이 명확해야 할 것이다.
쿠팡이 다소 성급하게,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로 소비자를 혼란에 빠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배경은 정부 규제로 10년간 투자한 로켓배송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법원 1심' 성격의 판결 권한을 가진 공정위가 낸 목소리에 겁도 났을 것이다. 기업이 아무리 크더라도 '영원한 갑'은 정부이고, 정부 규제를 꺼리는 것은 수백년 기업 경영의 역사가 말해준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