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거나 다친 침팬지들이 약초를 찾아 먹으며 '자가 치료'를 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최근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옥스퍼드 대학교 엘로디 프레이먼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침팬지가 새로운 의약품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우간다의 중앙삼림보호구역인 버동고(Budongo) 숲에서 야생 침팬지 두 군집을 수개월 간 추적 관찰하며 건강상태에 따른 먹이를 추적 관찰했다.
연구팀은 총 116일간 진행된 관찰에서 침팬지가 절뚝거리거나 몸이 아픈 듯 신체를 부여잡고 있는 등 통증의 징후가 나타나는 침팬지를 주의 깊게 살피고, 이 외에 멀쩡해 보이는 침팬지라도 질병에 걸렸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들의 배설물과 소변 샘플을 채취했다.
이어 아픈 침팬지가 나무 껍질이나 과일 껍질 등 평소에는 먹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경우에는 주의 깊게 이들을 살폈다.
일례로 한 수컷 침팬지는 심하게 손이 다쳐 관찰 대상이 됐다. 이 침팬지는 손을 사용하지 않고 걸었는데, 무리의 다른 침팬지들이 먹이를 먹고 있을 때 절뚝거리는 몸으로 특정 식물을 찾아 먹었다.
이 침팬지가 섭취한 식물을 양치류종인 크리스텔라 파라시티카(Christella parasitica)로 강력한 항염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무리 가운데 해당 양치류 식물을 먹은 것은 이 침팬지가 유일했다는 점에서 아픈 침팬지가 특정 식물을 찾아 먹은 사례로 분류됐다. 해당 침팬지는 이후 완전히 회복됐다.
연구팀은 이처럼 아픈 침팬지가 먹은 총 13종의 식물종을 확인하고 17개의 샘플을 수집해 독일 노이브란덴부르크 응용과학대학교 파비엔 슐츠 박사에게 보내고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식물의 추출물 중 90%가 박테리아 성장을 억제했으며, 3분의 1이 항염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픈 침팬지는 감염을 줄이고, 통증과 부기를 줄이는 약초를 찾아먹은 것이다.
또한 한 어린 침팬지는 무리에서 벗어나 장내 기생충을 줄이는 것으로 알려진 고양이 가시 나무(Cat-thorn Tree; 학명 Scutia myrtina)의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다. 대변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실제로 이 침팬지는 기생충에 심각하게 감염된 상태였다.
이전에도 침팬지가 스스로 약초를 찾아먹었다는 추정은 있었지만, 이를 입증하는 연구는 부족했다. 이번 연구는 침팬지가 아픈 가운데 우연히 약초를 먹는 것이 아닌,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약초를 찾아먹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침팬지가 어떻게 특정 식물을 먹는 법을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프레이먼 박사는 “지금 당장은 본능적으로 보이지만, 특정 식물 종을 특정 양만큼 복용하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학습됐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새로운 의약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전에는 의약품 개발에 필요한 식물을 무작위로 테스트했다면, 아픈 침팬지가 먹은 식물을 토대로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앞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얼굴에 상처를 입은 오랑우탄이 약초를 씹어 즙을 상처에 바르는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 오랑우탄이 사용한 식물은 항균, 항염 효과 등이 있는 '아카르 쿠닝'(Akar Kuning)이었다.
다만 이 경우 사회적으로 학습했다는 증거가 없어 개별적인 사례로 여겨졌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