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부터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털(VC) 모두 투자금을 쌓아두고 집행에 나서지 않고 있다. 관망세가 길어지는 형국이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사모펀드가 모아놓고 투자하지 않은 금액은 37조5000억원을 기록해 전년(28조2000억원) 대비 33%, 9조3000억원이 늘었다. 이는 벤처 붐이 시들해졌던 지난 2021년 미집행 자금보다 9조원이 많은 규모다.
벤처투자시장도 마찬가지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약 12조원의 자금이 집행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결성된 전체 펀드 가운데 실투자금을 뺀 금액이다. 사모펀드와 벤처펀드가 모아놓고 집행하지 않은 자금 규모는 총 50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사모펀드가 새로 모은 돈은 11조1000억원이 늘었지만 실제 투자한 금액은 1조8000억원으로 16% 수준에 불과했다. 이행금액도 77.5%에서 72.5%로 지난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돈은 몰리지만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투자은행(IB) 업계는 코로나 엔데믹 이후 이어진 고금리 기조와 투자기업의 기업가치 하락을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기업 가치가 갈수록 하향되고 있어 돈을 당장 투자하기보다는 좀더 기다려보자는 관망 움직임이 자금투자를 더디게 한다는 분석이다. 인공지능(AI)에 관심이 높지만 다른 업종에서 성장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는 다는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관측도 있다.
업계에서는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과 주가 상승 여력 등을 향후 주요 변수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하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기업가치도 이미 바닥으로 향해가는 만큼 버틸 수록 더 투자 분위기가 개선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특히 SK발 사업구조 재편도 관심사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부터 반도체, AI 중심의 사업 재편 소식은 국내 M&A시장의 최대 화두로 꼽힌다. 산업은행이 SK그룹 사업구조 재편을 염두에 두고 인수금융 자금 공급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관계자는 “SK발 사업구조 개편, 하반기 미국 대선은 물론 금리 인하에 대형 PE 펀드 만기까지 각종 이슈가 겹쳐있는 만큼 하반기에는 그간 쌓인 투자금이 풀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