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국회가 의사 집단행동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를 열었다. 전국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지 넉 달만이다. 그 사이 의대 교수들도 정부 정책에 반발해 집단 휴진에 돌입했고,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동네의원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환자들만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컸다.
이번 청문회는 국회가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던 정부와 의사단체를 한자리에 모아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퇴로 없던 의정갈등이 국회를 중재자로 삼아 반전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컸다.
결론적으로는 아쉬움이 컸던 청문회였다. 물론 정부와 의사단체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에다 첫 청문인 만큼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국회가 좀 더 적극적인 중재자 입장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은 주요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며 막강한 세를 과시했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을 핀셋 검증하겠다고 엄포도 미리 놨다.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도 마찬가지였다. 청문회 내내 야당 의원들은 증원 규모인 '2000명'이라는 숫자 출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증원 규모에 대해 '대통령 격노', '2000공' 등 용산과 접점을 찾는데 몰두하면서 의정갈등을 정쟁 도구로 이용하고자 했다. 치밀하고 정밀한 청문보다는 거야의 세를 활용해 윤석열 정부 치부를 찾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당 의원들은 무기력했다. 용산이 거론될 때마다 언성을 높이며 반박하는데 급급했고, 정부 증인에는 방어할 시간을 주는 데 집중했다. 의사단체나 의대 교수들에게는 파업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질책하는 모습도 보기 어려웠다.
청문회를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사람들은 환자였을 것이다. 의정 갈등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까지 나오면서 환자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환자들은 국회가 첨예한 갈등을 이어가는 정부와 의사단체를 따끔하게 질책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방안을 모색하길 바랐을 것이다.
여야가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청문회장 내에서도 정부와 의사단체는 공방을 이어가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현 사태는 모두 정부가 만든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한편 의사를 '노예'나 '범죄자' 취급하는 정부와는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불법임을 강조하며 수많은 환자 피해 역시 의사들로 인한 문제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결국 첫 청문회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청문 이후 조치다. 환자 단체들은 이달 말까지 진료가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거리로 나와 시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더 이상 의정 갈등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정치적 이해로 해석해선 안된다. 청문회를 통해 파악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환자 치료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갈등을 중재해야 한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