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엔 산하기구인 유엔 해비타트의 주최로 '사람 중심의 스마트 시티 국제가이드라인 개발' 전문가 그룹회의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렸다. 전 세계 유엔회원국에서 선발된 31명의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첫 번째 자리로 매우 의미 있다. 잠시 워크숍 쉬는 시간을 이용해 남미 국가 등을 포함한 몇몇 전문가들과 함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시장의 지배력을 갖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시장에서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 정부는 국내 토종기업들에 어떠한 보호정책과 지원을 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의 말을 잠깐 빌리자면, 글로벌 기업들은 해당 국가 및 도시 데이터 플랫폼을 설치해 빠른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확보해 나갔으나, 오히려 서비스 제공업체는 수집된 데이터를 가공해 비싼 가격에 다시 판매해 재정적 부담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규제나 진흥 정책들이 인공지능(AI)을 포함한 기술의 발전을 못 따라가는 부분에 대해서 모두 공감하며 이러한 글로벌 빅테크의 의존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플랫폼 육성과 이를 지원하는 혁신생태계의 주요한 역할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올해 상반기는 IT서비스·플랫폼 산업분야에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자국 IT기업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데 있어 세계 각국 정부가 나서며 규제와 진흥 사이의 줄다리기로 자국중심의 정책으로 가치사슬을 재편해 나가며, 이러한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거대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횡포를 막기 위해 3월부터 27개 회원국에 디지털 시장법(DMA)을 전면 시행하면서 전 세계 매출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초강경 정책으로 애플에 이어 메타에도 시장법 위반이라는 강경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일본국민 메신저로 80%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네이버의 라인 야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IT서비스 해외진출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개인정보 유출사건을 기인으로 일본정부에서 자국의 보호를 위해 네이버의 지분매각이라는 행정지도를 내리게 되면서 일본정부가 자국 통신사와 달리 강경한 처벌로 인해 외국기업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최근 플랫폼 규제 법이 시행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오히려 해외기업들과 경쟁하는 한국 ICT기업들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어 이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는 상황으로 과연 해당 정책이 실효성이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국내는 C-커머스 플랫폼인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태무·쉬인 등도 극초저가 전략으로 국내 유통 생태계에도 위협을 주고 있어 대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아 IT서비스·플랫폼 산업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초 공공전산망의 장애문제로 공공 IT서비스의 품질 문제가 제기되면서 11년 만에 공공 SW사업 참여 완화 등 SW진흥법에 대한 제도개선 과제가 추진돼 그동안 성장의 한계를 갖고 있던 IT 서비스업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IT서비스 기업인 삼성SDS, LG CNS, SK C&C 등을 포함해 많은 민간 기업이 공공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나, 공공사업 대기업참여 제한에 대한 기준으로 한동안 그룹사를 지원하며 내부거래에만 집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상용 소프트웨어(SW)와 SaaS 생태계 활성화 정책과 함께 이들은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 나가며 기존그룹사를 지원하는 전산실 차원에서 새로운 IT서비스 산업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디지털 전환의 선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글로벌 10대 경제국으로 도약한 우리나라는 유엔과 OECD 등에서 인정한 세계최고의 '전자정부'로 인정을 받았으며 IT 서비스인의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성장해 왔다. 특히 한국은 IT서비스를 전달하는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 제품 중심에서 SW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하면서 사용자가 무형적 가치를 플랫폼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 나가며 다양한 콘텐츠와 SW 산업을 활성화시켜 왔다. 이러한 고성장 발전을 통해 기존 시스템 SW 개발자는 물론 데이터 분석가, UX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군들을 만들어 나가며 최근에는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트레이너까지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인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며 많은 IT기업들은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 대한 공략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확장하는데 노력하고 있으나 성과는 아직 크지 않다.
이처럼 녹록지 않는 대내외 여건 속에서 IT 서비스인들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들에게도 특정 AI와 같은 신범용기술이 아닌 전반적인 IT 서비스 산업 고도화에 필요한 중장기적 로드맵과 새로운 미래혁신 좌표가 필요한 실정이다.
첫 번째로는 IT서비스 산업 고도화에 대한 규제개혁으로 국가차원의 새로운 혁신과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범부처 차원에서 종합 조정해 주는 정책 전담조직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함해 규제가 아닌 발전과 진흥관점에서 근본적인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잦은 요구사항 변경에 따른 개발기간 연장과 비용으로 공공 SW 품질이 떨어지는 주된 요인이 될 수 있어 이와 관련 발주처와 상의하는 사전절차가 의무화돼야 하며 만약 변동될 수밖에 없다면 예비비 책정 및 사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고 조정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되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로는 IT서비스업 생산성 개선과 함께 중·장기적인 로드맵과 실효성 있는 정책제안이 필요하다. 2021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IT서비스업의 생산성은 회원국 중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한 다각도 관점의 전 가치사슬기반의 산업차원의 정책연구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발주처 및 인재양성 부분까지도 함께 고려돼야 하며 과학적 기반의 산업현황 데이터 분석을 통해 명확한 정책개선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필자도 지난 20여년간 공공 SW사업평가하는데 있어, 발주기관의 정보화전략계획 수립 (ISP) 같은 사업도 물가상승률 대비 적은 예산배정은 물론이고 요식행위로 전락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해 전략적 위상을 잃었다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추가적으로 공공SW사업의 유찰률부터 생산성과 연계되거나 영향을 주는 핵심성과지표 활용 등 거시적·미시적 관점의 IT 서비스 산업분석도 필요해 보이며 이는 미래 IT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세 번째로는 IT 서비스 산업생태계의 체질개선이 필요로 보인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IT 아웃소싱 서비스 업체들 높은 품질과 우수하고 저렴한 IT인력을 기반으로 한 사업 추진은 정통적인 유지보수 시장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어 특히 IT 서비스 개발자 인재양성이 지능형 사물과 연결하는 SW개발자뿐만 아니라 AI와 빅데이터 등 부상되고 있는 신범용 기술을 이해하며 이를 조직에 확산할 수 있는 서비스 기획자 또는 비즈니스모델 개발 전문가(BA) 양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의 생태계의 변화는 인도의 TCS, 인포시스를 포함해 베트남의 CMC 등이 우수하고 저렴한 IT 인력을 제공하며 국내 IT 아웃소싱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IT관련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상생 협력뿐만 아니라 이제는 국내에 진출한 해외 IT기업들과의 협력과 경쟁으로 산업생태계의 변화가 예상되며 이에 대해 정부도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국내 IT서비스산업관련 산업생태계의 전향적 전환의 필요성에 대해 민간, 정부와 학계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마지막으로는 해외 진출과 글로벌 IT산업 생태계와 협력이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SW기업의 해외 진출과 수출확대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글로벌 SW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비중은 1~1.5%으로 상당히 낮은 비율인데, 앞서 설명한 다양한 여건을 생각한다면, 국내 IT서비스 기업의 해외진출은 미래 생존을 위해 필수전략이 되었다. SaaS 기반의 SW 중심으로 다양한 기회와 도전이 예상되며, 이미 ODA(공적개발원조)를 통해 많은 중견 IT기업들은 스마트시티, 스마트 팩토리, 클라우드 기반 통합 공급망 관리, 모빌리티 솔루션 등을 포함하여 동남아를 비롯하여 중동까지 진출하고자 한다. 현재는 해외 법인들 둔 국내 대기업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으니,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정책과 지원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업체인 화웨이의 경우 중국정부의 강력한 지원정책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며 다양한 AI·빅데이터 기반 서비스 경험을 축적의 시간을 가지고 성장하여 해외수출시장에서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로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때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 영국의 자동차 산업 등을 포함한 주력산업이 몰락한 사례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우리에게 익숙한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인도의 자동차 제조업체 타타 모터스(Tata Motors)가 인수했으며,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본국인 영국은 자국 반도체 기업이 외국 동종 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국가 기술 손실과 안보 위협으로 보아 반대하는 기류가 있었으나 결국 일본의 소프트 뱅크에 인수됐다. 이뿐만 아니라 화장품 회사인 더 바디샵은 프랑스 로레알 그룹에 인수되는 등 수많은 영국의 대표 기업들이 다른 나라의 대표기업에 인수 합병되며 자국의 대표 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국가와 국가의 대표기업들은 지난 역사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창의와 혁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제 우리 IT 서비스 산업계도 변화와 개혁에 요구되는 국가차원의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이정훈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jhoonlee@yonsei.ac.kr
〈필자〉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이자 DT기술경영 센터장이다. 현재 서울시 명예시장과 한국 IT서비스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기술경영경제학회장을 역임했다. 국가 스마트도시위원회 위원, 공공데이터전략위원회 소속 데이터 개방·활용 전문위원회 위원장, 국가데이터 정책위원회 생산·공유 분과위원회에서 실무위원 등 국내외 디지털전환 정책 및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2023년부터 UN HABITAT에서 주도하고 있는 '사람중심의 스미트도시 구현을 위한 국제가이드라인'의 전문가 그룹에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