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이노그리드 사태에 부쳐

[ET시선]이노그리드 사태에 부쳐

10년 전, 클라우드 태동기 시절 우리나라 클라우드 시장은 지금보다 더 척박했다. 지금은 정보기술(IT)업계에서 클라우드를 모르는 이가 없지만 당시엔 기업이나 공공 IT 담당자 가운데 이를 이해하는 이가 드물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국산 클라우드 기술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던 거의 유일한 기업이 이노그리드였다. 국내서 클라우드 시장이 열릴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노그리드는 국산 기술 개발이라는 소명을 놓지 않았다.

5년 전, 김명진 대표가 새롭게 취임하면서 이노그리드는 변화를 맞이했다. 김 대표는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 답게 이노그리드 클라우드 사업 전략을 구체화하고 기술기반 영업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이노그리드는 여전히 직원수 50명 수준의 작은 기술 기업이었다. 김 대표 취임 후 시장 분위기는 점차 바뀌었다. 정보기술(IT) 대기업 상당수가 클라우드 파트너로 이노그리드를 낙점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클라우드 기업 중 한 곳이 이노그리드였다.

두 달 전, 이노그리드는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 획득 소식을 알렸다. CSAP는 대기업도 받기 어려운 까다로운 인증이다. CSAP를 획득했다는 것은 정부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노그리드는 삼수 끝에 3년 만에 CSAP를 획득했다. 중소기업이 해마다 수 억원에 달하는 비용과 인력, 시간을 투입하기란 쉽지 않다. 김 대표는 CSAP 획득에 사활을 걸었다고 늘 얘기했다. 기술력있는 중소기업이라는 것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CSAP를 준비하면서 기술력이 더 탄탄해졌다며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 달, 이노그리드가 IPO 간담회를 개최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단순한 IT기업의 상장이 아니라 시장을 만들고 기술을 지속 개발해온 기업의 상장이었다. 국산 소프트웨어 기업이 기술 가치를 인정받아 상장한다는 점에서 뜻깊기도 했다. 특히 김 대표가 이날 제시한 국가 대표 클라우드 기업이 되겠다는 회사 비전 발표에는 토종 기술 기업으로서 포부가 느껴졌다. 10년 넘게 한우물을 파오며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 전문인력의 힘이 드디어 빛을 발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2주 전,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업계 많은 이들이 이노그리드의 상장 승인 취소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거래소는 최대주주 법적 분쟁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상장 10여일을 앞두고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취소했다. 이노그리드는 전 최대주주였던 박모씨의 투서 한 장으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법적 소송도 없어 분쟁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이노그리드 주장이다. 결국 이노그리드는 거래소에 재심사를 청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내달 열릴 시장위원회 최종 결정이다. 이노그리드는 다음달 열릴 시장위원회에서 거래소가 우려했던 부분에 대해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 등을 제대로 소명해야 한다. 그리고 위원회는 이 내용을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만약 거래소 우려만큼 주주와 시장에 큰 피해가 발생할 여지가 적다면 이노그리드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게 산업계 중론이다.

전도유망한 기업 명운이 거래소와 시장위원회 손에 달렸다. 지난 10년 간 이 시장을 취재한 기자로서 이노그리드가 상장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까지 진출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 달 후엔 이노그리드가 악재를 딛고 상장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를 바란다.

김지선 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