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31〉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제6공화국 출범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87년 6월 29일.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표위원은 이날 오전 10시 중앙당사에서 민주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민주화 6·29선언이었다. 선언 내용은 △여야 합의 아래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고, 새 헌법에 따라 1988년 2월 평화적 정부 이양을 하고 △김대중씨를 사면복권한다는 등 8개 항이었다.

노 대표위원은 발표 후 “이 선언이 수용되지 않으면 민정당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위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모든 것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노 대표는 “이날 아침 서재에서 이순신 장관의 필사즉생을 붓글씨로 썼다”고 당시 결단의 심경을 회고했다.(노태우 회고록 상)

이 선언에 국민은 열광했다. 그토록 소망해 온 '대통령 직선제'를 여당 대표가 선언한 것에 환호했다. 서울시청 인근 소공동의 한 찻집 주인은 '오늘같이 기쁜 날 차 값은 무료입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무료로 차를 제공했다.

야당도 크게 환영했다.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이 시점에서 가장 희망 찬 발표로, 전적으로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김대중 민주당 상임고문도 “노 대표의 선언은 고무적인 것으로, 이를 환영한다.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이틀 뒤인 7월 1일 오전 10시 전두환 대통령은 노 대표위원의 선언을 수용하는 시국 수습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전 대통령은 “노 대표가 건의한 내용을 전폭 수용해서 획기적인 민주 발전과 국민 화합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전 대통령은 “여야가 조속한 시일 안에 대통령 직선제를 합의해서 개헌이 확정되면 임기 중 새 헌법에 따라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고, 1988년 2월 25일 후임 대통령에게 평화적으로 정부를 이양할 것임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이날 담화는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가는 분수령이었다.

여야는 '8인 정치회담'을 구성해서 대통령 직선제 논의에 착수했다. 여야가 합의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은 10월 1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헌안은 10월 27일 국민투표에서 93.1%의 찬성으로 직선제 헌법으로 확정했다.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으로 했다.

정부는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12월 16일 실시한다고 11월 16일 공고했다.

민정당은 노태우 후보, 민주당은 김영삼 후보, 평민당은 김대중 후보, 공화당은 김종필 후보를 각각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군소정당에서는 4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선거 과정에서 4자 필승론이 등장했다. 하나는 여당에서 나온 필승론이다. 여당 후보는 한 명이고 야당 후보가 셋이면 반드시 여당 후보가 승리한다는 논리였다. 다른 4자 필승론은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주장했다. 충청 표를 김종필 후보가 가져가고 영남 표를 노태우와 김영삼 후보가 나눠 가져가면 호남 표와 수도권 표를 가진 자신이 승리한다는 논거였다.

여당 후보인 노태우 후보는 '안정'과 '보통사람 시대'를 내세웠다. 반면에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군정 종식'을 외쳤다.

노태우 후보는 대선 기간에 과학기술 공약으로 △고급 과학기술 두뇌를 선진국 수준으로 양성·확대하고 새마을운동에 버금가는 과학화 운동을 전개한다 △2000년대에 세계 10위권의 기술선진국을 구현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고용 효과가 큰 기계와 부품산업을 국산화하겠다고 다짐했다.

12월 17일. 16년 만에 국민 선택의 날이 왔다.

개표 결과 노태우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득표율은 △노태우 후보 유효투표의 36.64%(828만2733표) △김영삼 후보 28.03%(633만7581표 △김대중 후보 27.04%(611만3375표) △김종필 후보 8.06%(182만3067표)를 각각 얻었다. 양김(김영삼·김대중) 득표율의 합계는 55.07%였다. 양김이 후보 단일화를 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12월 18일 오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체 회의를 열고 노태우 후보를 제13대 대통령 당선자로 의결, 공고하고 당선통지서를 노 후보에게 전달했다. 노 후보가 제13대 대통령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노태우 당선자는 경북 달성군 공산면(현 대구시 중구)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육사 11기로 입학했다. 육사에서 전두환은 축구부, 노태우는 럭비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노 당선자는 육사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 후 맹호부대 대대장으로 월남에 파병됐다. 귀국 후 보병 연대장을 거쳐 준장으로 승진해 제9공수여단장,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 9사단장, 수도경비사령관, 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대장으로 전역했다.

노 당선자는 “군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내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주요 보직을 세 차례나 인수인계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그만큼 각별했다.

대장 예편 뒤 5공화국에서 정무장관, 체육부 장관, 내무부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5공 2인자로 자리매김 했다.

노 당선자는 내무부 장관 시절 공직사회에 일대에 혁신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6시 정시 퇴근'을 지시하고 이를 실천했다. 노태우 장관은 일이 없는데도 상사 눈치를 살피느라 퇴근하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오후 6시에 모두 퇴근을 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이게 진심인가” 하며 머뭇거리자 이춘구 당시 차관이 오후 6시가 되면 각 방을 돌며 퇴근 상태를 확인했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같은 지시에 공무원과 그 가족들은 두 손을 들어 반겼다. 한 직원은 일찍 귀가하자 아내가 깜짝 놀라며 “당신 직장을 그만둔 것이냐 아니면 지방으로 좌천됐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만큼 공직자의 오후 6시 퇴근은 파격이었다.

임경호 전 경기도지사(당시 내무부 행정과장)의 말. “이춘구 당시 차관이 오후 6시만 되면 매일 각 과를 점검하면서 퇴근을 독촉했다. 차트 보고를 폐지하고, 내무부 역사상 처음으로 과장급 이상 부부동반 송년 만찬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다. 이날 노 장관이 '베사메 무초'를 불러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노태우 대통령을 말한다)

1988년 1월 19일 정부 인수 업무를 전담할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사무실을 열고 정식 업무를 시작했다. 인수위원장은 이춘구 민정당 의원이 맡았다. 정치 분야에는 최병렬 의원, 경제 분야에는 김종인 의원, 외교안보 분야에는 현홍주 의원, 사회문화 분야에는 김중위 의원, 일반행정 분야에는 이진 의원, 총무의전 분야에는 강용식 의원 등을 각각 임명했다.

2월 25일 오전 10시 13대 대통령 취임식이 국회 앞 마당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오전 9시 58분께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취임식장에 함께 입장하면서 취임식은 시작됐다. 취임식에는 윤보선·최규하 전직 대통령과 각국 경축사절단, 정부 고위인사를 비롯해 각계 각층 인사 2만5000여명이 참석해서 대통령 취임을 축하했다. '보통사람 시대'를 상징하듯 초대받은 사람들은 도착한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다. 지정석이 없었다.

취임식은 개회선언, 국민의례, 식사, 취임 선서, 취임사 순으로 45분 동안 계속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연단 앞에서 왼손으로 선서문을 들고 오른손을 든 채로 취임 선서를 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지 증진 및 민족문화 창달에 노력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노 대통령은 이어 25분 동안 계속된 취임사를 통해 “우리는 오늘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기 위해 성스러운 민주의 전당 앞에 모였다”면서 “기업인의 창의와 자유를 더욱 복돋우고 근로자, 농어민, 중소사업공인들의 권익을 최대한 신장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이상과 꿈을 수용해서 항상 개혁하고 새로워지는 진취적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정성을 다할 것”이라면서 “누구든지 성실하게 일한 만큼 보람과 결실을 거두면서 희망을 품고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겨레의 큰 경사인 서울올림픽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면서 “모두 합심해서 지구촌의 모든 사람에게 길이 기억할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승화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꿈과 아픔을 함께하는 동행자, 이것이 제가 진실로 추구하는 대통령 모습”이라며 담대한 '보통사람 시대'를 선언했다.

취임사 도중에는 모두 여덟 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취임식을 시작으로 '보통사람 시대'를 선언한 노태우 정부의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국민의 선택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