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33〉6공화국 첫 과기처 업무보고…과학기술부로 개편 추진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4월 12일 청와대에서 이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업무계획을 보고받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4월 12일 청와대에서 이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업무계획을 보고받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대통령 업무보고는 각 부처의 가장 큰 연례행사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J씨의 말. “각 부처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한 해 추진할 주요 업무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진행합니다. 따라서 대통령 업무보고는 각 부처에게 연중 가장 중요하고 큰 일입니다.”

1988년 각 부처는 대통령에게 주요 업무보고를 두 번 했다. 정권 교체 이전에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그리고 2월 25일 6공화국 출범 후에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공백이 발생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5공 당시 청와대 인사의 회고. “정권 교체기를 앞둔 시점이지만 1988년 1월 14일부터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등을 시작으로 각 부처 업무보고를 받았습니다. 다만 예년과 달리 몇개 부처를 묶어 한꺼번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보고 내용도 부처가 새 정부에 이양할 업무와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5공이 마무리해야 할 사업 등이었습니다.”

과학기술처는 1월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박긍식 장관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박긍식 장관은 이날 “올해 특정연구개발 사업에 650억원을 투입, 신소제 반도체와 생명공학, 정밀화학 등 미래지향적 첨단과학산업을 중점 개발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박 장관은 이어 “서해안 시대에 대비해 중국과 과학기술 협력을 추진하고 개발도상국에 청년해외기술봉사단을 파견해 개도국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면서 “대덕연구단지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기초과학지원센터(현 기초과학지원연구원)를 설립, 전국 대학에 대한 공동연구의 장을 마련하고 과학고-과기대-과기원을 중심으로 박사급 고급 과학기술인재 양성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3월 4일.

노태우 대통령은 2·25 조각(組閣)에 이어 이날 오후 각 부처 차관급 인사를 발표했다.

과학기술처 차관에는 신만교 기획관리실장을 승진 기용했다. 신 차관은 과학기술처 발족 이후 21년간 과기처에 몸담아온 과학기술 행정통으로 과기처 정보산업국장 등을 역임했다. 후임 기획관리실장에는 최영환 기술정책실장(전 과학기술처 차관)을 전보 발령했다.

3월 10일.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부터 각 부처 주요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전 문화부 장관)은 이에 앞서 8일 “각 부처 업무보고는 3월 10일부터 청와대에서 시작하며 중앙부처 업무보고를 받은 뒤 14개 시도 순시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는 종전과 달리 주요 추진 정책과 대통령이 결심해야 할 현안, 대통령 선거공약 등 중요한 국정 사항 위주로 진행한다”면서 “시간도 30분 이내로 종전보다 짧게 하고 각 부처 장관이 직접 업무를 보고하며 배석자도 각 부처 장관과 기획관리실 등으로 제한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처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앞두고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장관과 차관, 실장 등이 모두 바뀐 이후 첫 업무보고였다.

4월 12일.

과학기술처는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이날 아침 서울에는 촉촉한 봄비가 내렸다.

노태우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기 전 “기상예보대로 비가 내려 오늘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빗속에서 산책을 했다”면서 “과학기술처 보고를 받는 날 단비가 내린 걸 보니 보고를 앞당겼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고 말해 초긴장 상태인 보고장 분위기를 일순간 부드럽게 만들었다.

보고장에는 과학기술처에서 장관과 차관, 기획관리실장이, 그리고 청와대에서 홍설철 비서실장, 경제수석 등이 배석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상징하듯 대통령이 원탁 책상 가운데 앉고 오른쪽에 이관 장관, 왼편에 홍 실장 등이 자리했다. 새 정부의 바뀐 권력 모습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업무보고를 받고 “청소년들이 과학기술과 친숙해지도록 소규모 과학관을 많이 지어 어릴적부터 노벨상 받는 꿈을 심어주도록 해야 우리가 과학기술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는 일만이 해외 경쟁력 강화에 결정적 요인인 만큼 기업도 정부와 함께 과학기술 인재양성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덕연구단지에 이어 제2, 3의 과학연구단지를 조성하라”며 “대덕연구단지를 비롯, 과학연구단지에는 교육시설과 함께 복지시설 등을 최고 수준으로 갖춰 과학기술자들이 마음놓고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관 장관은 이날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과학기술부 확대 개편과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 설치, 기초과학지원센터 설립, 과학기술특별회계 신설, 청년해외기술봉사단 창단, 한국과학기술원의 학사·연구기능 분리 독립, 연구개발비 GNP 대비 5% 확대, 64M D램 개발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과학기술의 고도화와 효율적인 과학기술 행정을 추진하기 위해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확대 개편할 계획”이라며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를 올해 안에 설치 운영하고 국책연구사업을 기술선진국 도약을 뒷받침할 중추사업으로 확대해 단기적으로 부품과 소재개발, SW개발에 역점을 두고 중장기로는 1990년대 중반까지 64M D램 반도체 개발과 초전도체 상용화를 실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대학의 방대한 연구개발 잠재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덕연구단지 안에 기초과학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올해 안에 기초과학육성법을 제정하겠다”면서 “내년 중 청년해외기술봉사단을 창단, 개발도상국에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어 “과학기술 투자비 재정확보 방안으로 과학기술특별회계를 설치하고 1986년 현재 GNP 대비 2% 수준인 과학기술 투자를 1991년까지 GNP 대비 3%, 2001년까지 5%까지 끌어올리는 등 투자를 확대하고 전남 광주에 제2과학기술대학과 연구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한국과학기술원 학사와 연구기능을 분리, 독립하고 청소년 과학화사업을 범국가적으로 전개하며 이를 위해 대덕연구단지 안에 종합과학관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처가 이날 보고한 주요 업무계획은 아래와 같다.

◇과학행정 강화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를 올해 안에 설치 운영하고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의 고도화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학기술부로 확대 개편할 계획이다. 또 기상업무 강화를 위해 기상대를 기상청으로 개편하고 한국과학기술원의 학사·연구기능을 분리 독립한다.

◇첨단기술 개발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첨단기술개발 사업을 단·중·장기로 나눠 추진한다. 64M D램 초고집적 반도체 등을 1990년대 초까지 개발하고 신소재 개발 기술을 세계 정상급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자동화 기술과 부품, 소재류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오는 2000년까지 세계 5위의 SW선진국이 되기 위해 산학연 공동으로 핵심기술을 개발한다.

◇기초과학지원센터 설립

전국 대학교수들이 고가 첨단과학 장비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초과학지원센터(가칭)를 대덕연구단지 안에 설립한다. 기초과학육성을 위해 기초과학육성법을 연내 제정한다.

◇청년해외 기술봉사단

청년해외 기술봉사단을 창단해 유엔 협조 아래 내년부터 개발도상국에 50명을 파견한다. 미국 평화봉사단, 영국 해외자원봉사단, 일본 청년해외협력대와 같은 성격의 봉사단은 1991년 300명, 1995년 1000명을 해외에 파견한다.

◇중국과 과학기술 협력

서해안 시대 개막을 앞두고 중국과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추진한다. 민간차원의 학술교류를 시작으로 해양, 기상 등에 관한 양국 정보를 교환하는 등 단계적으로 교류를 확대한다.

그해 4월 21일.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첫 기자회견을 열고 “21세기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남의 나라 모방으로는 안된다”면서 “창조하는 과기인재를 양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