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4법이 야당 단독 표결로 국회를 통과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 국회가 결과가 뻔한 소모전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지적이다. 여야는 이 같은 거부권 정국이 지지율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회는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 재석 189인 중 찬성 189인으로 가결됐다. 이날도 여당 의원들은 법안 강행에 반발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날 마지막으로 처리된 EBS법을 포함한 '방송 4법'은 방송통신위원회 의결 정족수를 현행 상임위원 2인에서 4인으로 변경하는 내용,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 숫자를 대폭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언론·방송 학회와 관련 직능단체에 부여하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방송4법 저지를 위해 여당이 추진해온 필리버스터는 지난 25일부터 이날까지 111시간 끝에 종료됐다. 1개 법안마다 '법안 상정→필리버스터→강제 종결→표결' 수순이 반복됐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가진 규탄대회에서 “문재인 정권이 민주노총 언론노조와 한편이 돼 장악했던 공영방송을 영구적으로 민주당 손아귀에 쥐겠다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며 “대통령께 재의요구권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방송4법은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재의결 여지가 남아있으나 국민의힘에서 8표 이상 이탈표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같은 도돌이표 의정활동은 재현될 가능성이 많다. 민주당은 내달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법'과 '노란봉투법' 통과를 추진한다. 국민의힘은 물가 상승과 기업 경영 위축 등을 이유로 두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또 다시 필리버스터 정국이 예상된다.
운명이 정해진 필리버스터 결말에 여야 모두에게 실익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민의힘은 긴 시간 소모전을 치렀으나 잦은 필리버스터로 국민들 주목도가 낮아진데다 제대로 부당함을 호소하지 못하면서 '전략부재'를 드러냈다. 민주당 역시 법안 강행에 사력을 다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폐기'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모두 실익은 없지만 소수 여당입장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대통령 거부권에 매달리기 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음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이 낮아졌는데, 향후 필리버스터 정국이 지속될 경우 양당 지지율 변화를 의미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