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통신 분야 연구자로서 지난 20여년간 경험했던 일들이 오버랩이 되곤 한다. 1990년대 후반 휴대폰이 상용화되면서 무선통신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2·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관련 분야 연구와 투자가 봇물처럼 이루어졌다.
이동통신 서비스 분야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금의 AI 분야와 같이 국내외 대학교에서 관련 전공이 크게 늘었고, 연구개발 지원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휴대폰 보급률이 늘면서 규모의 경제와 치열한 개발 경쟁으로 단가가 하락했다. 이동통신 산업이 포화를 맞았던 것이다.
음성통화와 문자 위주였던 과거 피처폰이 사라지고 애플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은 데이터 및 다양한 서비스가 주된 목적이 되었다. 통신기술 자체보다는 소프트웨어(SW)와 애플리케이션(앱)이 주된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는 통신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했다. 그간 배출된 우수 인력들은 과거의 폭발적 발전에 대한 향수와 함께 통신 분야 발전 가능성에 회의를 느끼게 했다. 대학에서 관련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흐름을 현장에서 느끼고 있다.
이동통신은 이제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서비스들이 도래하면서 6G 이동통신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간 통신을 넘어 사물간 정보 전달이 주된 대상이 되는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교체 수요 시장의 성격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좁은 범위의 통신 시장이다. 지구 표면상에서 공기를 매개로 사람과 사물들이 무선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한정적 분야만을 의미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공유해 그 가치를 올린다. 정보 교환 욕구는 본능에 가깝다.
이동통신 산업의 발전만으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통신의 필요성을 모두 충족할 수는 없다. 보다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싶어하며, 현재 그런 현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우주 및 위성통신 분야를 들 수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로 대표되는 근거리 위성과의 통신, 화성 이주시 행성 간의 통신 등이다. 통신 매체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바뀌게 돼 채널 특성이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주 및 위성통신 분야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투자와 인력 양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통신 기술은 이처럼 기존과 다른 환경에서의 정보 교환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우주 뿐만 아니라 지표 아래 바다 표면 및 심해, 몸 표면(웨어러블 통신)에 더해 몸 내부(인체 삽입형 의료기기), 지하 갱도(하이어 튜브), 차량이나 로봇 등 인공물 내외부 등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듯 매체 및 요구 사항이 달라지는 환경에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통신 이론에 근거해 매체의 특성 및 요구 조건에 특화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기존의 이동통신에 치우쳤던 흐름의 확장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예로 일론 머스크의 대표적 기업인 테슬라, 스페이스X, 뉴럴링크, 보링컴퍼니 등은 차량, 우주, 지하, 생체 내 등 새로운 매질에서 고효율의 정보 전달이 가능한 새로운 통신 기술을 필요로 한다.
또 AI 발전에 따라 다루는 데이터의 양과 처리 속도가 증대되면서 통신에서 지원해야 하는 정보량과 속도도 급증하고 있다. 튜링 머신으로 대표되는 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같은 연산장치와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대표되는 메모리들간의 대규모 초고속 통신이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기술의 발전 요구 정도는 AI 기술 발전의 속도와 비견될 정도이며, AI 하드웨어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도 'NVlink' 라는 통신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칩들간(chip to chip), 서버들간의 통신 성능이 AI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이동통신에서 경험해온 수십 Mbps(10의 6승)보다 수만 배 이상 빠른 Tbps(10의 12승) 전송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를 기존 구리선이나 광을 통해 구현하는 것은 어렵다. 기술적으로 커다란 진보를 필요로 한 이유다.
이는 자율주행차나 로봇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센서와 구동기들의 정보를 중앙 컴퓨터에 연결하는 새로운 모빌리티 산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연구개발 자원이나 인력들은 기존의 이동통신 분야에 치우쳐져 있다.
통신의 이론적인 면은 유사할 수 있으나 매체·환경 및 다양한 요구 사항들의 차이에서 비롯한 새로운 기술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와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위성체·차량·로봇 등의 물리적 특성, 우주·바다·신체·뇌와 같은 매체의 전달 특성에 맞게 송·수신 방식을 개발하고 저전력이면서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적용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식을 직접 이해하고 공부하거나 관련 전문가들과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전기전자 분야에서 주로 다루지 않았던 차량, 로봇, 인체 신경망에 대한 이해 등이 필요하고 이를 적절히 정의하고 모델링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통신 분야 지식과 함께 관련 전문가들과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깊이있는 연구를 추구하는 기존 연구 트렌드와 달리 융·복합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차량을 다루는 기계 분야의 전문가, 생체를 다루는 신경과학자 및 임상의사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 용어에서 출발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식들의 차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이질감은 긴밀한 협력과 융·복합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도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진정한 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피상적인 협력, 보여주기식 협업으로 흐르는 경우도 많다. 실무 연구개발을 하는 대학원생들 역시 깊이있는 협업의 어려움을 체험하고 있으며, 자기 전문 분야 전문적인 공부와 함께 타 분야에 대한 이해를 추가적으로 해야 하는 부담을 종종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융·복합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즐기며 도전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몇 년 후에는 그 분야를 선도하고 다른 여러 분야의 학생들을 리딩하는 연구자로 반드시 성장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우리는 경계가 없고 여러 분야가 접목하는 미래 사회에서 이러한 인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일론 머스크나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등에서 그 위력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다.
AI가 발전하면서 사람을 급속히 대체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미래 인재들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패권을 선점할 수 있다. 통신 분야에서도 미래를 내다보고 다양한 분야에 대해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관련 분야 인재를 키워야 한다.
최지웅 D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
〈필자〉 최지웅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현재 DGIST 뇌공학융합연구센터장직을 맡고 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친 뒤 실리콘밸리의 마벨세미컨덕터에서 근무했다. 유무선 통신 및 신호처리 기술을 전공했다. DGIST에 부임하면서 뇌공학,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차량용 네트워킹 및 보안 등 다양한 융복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