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각박한 인생살이를 반추해 보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한다. 예술을 가까이해 늙어가고 좁혀져 가는 인생을 스스로 격려해야 한다. 예술은 나에게 그간 효율제일주의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 그대로 나도 역시 그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된다.
30년 전 오대산 월정사에 처음으로 갔다. 영화에서 봤던 그대로 신비로움을 주는 고 사찰이다. 팔각구층 석탑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곳에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주제를 갖는 석조 조각상이 하나 있다. 정식 명칭을 석조보살좌상이다. 물론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7년 전 쯤이다. 고려시대 전기 작품이다. 손에 향로를 들고 탑에 모셔진 부처님 진신 사리를 향해 무릎을 꿇고 향을 올리는 모습이다.
젊은이인 듯하다. 나이는 스물네 살쯤 되어 보인다. 천년 이상을 이 모습을 하고 있다. 표정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아! 글쎄 부처님에게 농을 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이 젊은이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엄숙하고, 계율에 따르고,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을 하는,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자존감은 어딘가 두고 온듯한 어느 하루의 모습은 아니다. 절대자에 대해서도 굽힘이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성을 긍지와 함께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돌로 빗은 조각이 10여년 전부터 월정사 성보 박물관 특별전시실로 옮겨가 있다. 실내에서 신비로운 조명으로 전시효과는 극대화된 느낌이다. 탑 앞에 석양이 비취기 시작하는 무렵에 느낌을 받은 모습과는 확연이 다르다. 석물이 자연에 의해 마모되는 되는 것을 막고자 실내로 옮겨 놓은 것이다. 원래 자리에는 복제품이 놓여 있다. 원작의 맛을 내려고 무척이나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원작과는 천양지차이를 보인다. 원작은 상체를 정면에서 봤을 때 2도가량 좌측으로 굽혔다. 약간의 굽힘이 석상 전체에 살아 있는 역동성을 온몸에 심어놓고 발산 시키는 듯하다. 몸속에 생명체(배터리)가 있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복제품은 이보다 약간 더 4~5도가량 좌측으로 굽어져 있다. 원작이 주는 감흥을 그대로 이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부분이 이 석상에 있어 가장 신비로운 부분이다. 이 석상의 두 번째 작품을 즐기는 포인트는 복어 배 같이 볼이 도톰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표정이 살아 숨 쉬는 듯 보이게 된다. 세 번째로 볼만한 부분이 더 있다. 높은 원통형 보관(모자)을 쓰고 있다. 조각상의 시각적 보정을 하고 있다. 보관 둘레가 이마 둘레보다 작다. 또, 얼굴은 몸에 비해 좀 큰 상태다. 멀리 있는 것이 작게 보이는 현상(소실점 원리)을 역보정한 것이다. 왼쪽 무릎을 세운 상태로 꿇어 앉아 있다. 이런 모습을 호궤라 한다. 중앙아시아로부터 유래해 오랑캐 '호'자를 앞에 붙였다.
복제품이 얼마나 조악한 지는 이 석상의 뒤편 옷을 여민 자태에서 들어 난다. 원형은 삼단으로 여며 놓았다. 복제품은 그야말로 빈칸 채워 놓기 식으로 얼버무려 놓았다. 기능적인 설명이 있을 뿐이다. 아무런 감흥을 불려 일으키지는 못한다. 용역을 받고 제시간 내에 개수와 규격를 맞춰 납품을 해야 하는 현대 쟁이들의 솜씨 정도를 후대에 남기려 하고 있다. 외곽 치수가 같다고 해서 원형의 미가 되살아 날 수 없다. 무생물 돌에서 혼을 불어 넣어 감동을 전하는 생명체로 만드는 것 이것이 조각 예술이 갖는 의미가 아니던가?
이번 여름 휴가 때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을 만나 보기를 권면한다. 원형과 복제품을 비교해보면 볼수록 원형의 예술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예술품에 대한 감흥을 일으키게 된다.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반추해보는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여호영 지아이에스 대표 yeohy_gi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