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데이터센터 '코리아 패싱' 시작됐다

글로벌 주요 IT기업들, 韓서 발길 돌려

데이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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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데이터센터 건립 후보지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거나 후순위로 제치는 일이 발생한다.

지역 주민 반발에다 정부 규제까지 늘어나면서 투자를 늦추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한국을 데이터센터 아시아 거점으로까지 타진했던 몇 년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 A 사는 올 초 한국에 데이터센터 설립을 타진하다 최종 다른 나라를 선택했다. 한국이 입지와 인프라 측면에서 우위에 있지만 다른 요건은 뒤처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A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거점을 만들기 위해 수 조원대 투자를 계획했지만 한국의 경우 데이터센터 설립 허가에만 수 년이 걸릴 수 있다는 내부 우려가 나왔다”면서 “결국 AI 발전 속도를 뒷받침할 거점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려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테크 B사는 몇 년 전 한국에 데이터센터 신규 설립을 위해 관련 인력을 채용했다가 최근 이들을 아태 지역 다른 국가로 재배치하고 있다. 인력뿐만 아니라 관련 투자 역시 한국은 후순위로 밀렸다.

B사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관련 본사 고급 인력이 파견돼 기술 이전 등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면서 “데이터센터와 밀접한 AI 관련 투자 역시 함께 다른 나라로 뺏기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글로벌 기업의 데이터센터 '코리아 패싱'은 이제 시작이라는 관측이다다. 데이터센터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민원에 따른 지체와 정부 규제 정책이 더해지면서다.

대표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전력계통영향평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집적정보통신시설 보호지침) 등은 데이터센터를 신규 설립하거나 운영하는데 사업자 부담을 가중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 데이터센터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지역 민원에 부딪혀 설립이 취소될 경우 다시 부지를 알아보고 타진하는데까지 수 년이 걸릴 수 있다”면서 “시간이 생명인 상황에서 각종 규제까지 맞물린 한국은 투자에 매력적이지 않은 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에 주변 국가는 주요 빅테크 기업 데이터센터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일본은 마이크로소프트(MS), 말레이시아는 구글, 태국은 아마존웹서비스(AWS) 데이터센터를 최근 유치했다. 이들 글로벌 빅테크는 데이터센터 설립뿐만 아니라 AI, 클라우드 등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해당 지역에 수 조원대를 투자 중이다.

나연묵 단국대 교수(전 한국정보과학회장)는 “전자파나 열섬현상 등을 이유로 지역 주민이 데이터센터 설립을 반대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면서 “정부가 데이터센터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과 함께 규제 개선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선 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