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저장·처리하기 위해 데이터센터 중요성이 커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웹서비스 등이 세계 곳곳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AI 시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들 빅테크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기 위한 국가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나라는 이와 반대 분위기다. 데이터센터 설립·유지가 이전보다 어려워지는 정책을 펼치면서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투자마저 가로막는다.
데이터센터 산업이 AI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점에서 산업 진흥을 동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글로벌 빅테크,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경쟁적으로 세계 주요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고 있다.
생성형 AI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와 협력하며 AI 시장을 이끄는 MS는 데이터센터 설립에 가장 적극적이다.
MS는 올 초 스페인 북동부지역에 있는 아라곤에 3조원 가량을 투자해 데이터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어 지난 5월에는 프랑스에 6조원 가량을 투입, 데이터센터 설립을 비롯해 클라우드와 AI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6월에는 인도 남부 텔랑가나주에 약 5조원을 투입해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부지 확보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AI와 클라우드 성장세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신규 설립하는 분위기다.
MS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3조원과 2조원 가량을 각각 투자해 데이터센터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도 3조원 가량을 투입해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으며 최근에는 일본에 2025년까지 3조원 가량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구글은 말레이시아(2.3조원)와 싱가포르(7조원)에, AWS는 태국(7조원)과 대만(수십억 달러 추정), 말레이시아(8조원), 싱가포르(12조원)에 데이터센터 투자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들 투자지역에서 한국은 제외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글로벌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 되지만 한국은 지난해 AWS 투자 계획 발표 이외 데이터센터 설립을 타진하는 곳이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신규 데이터센터 설립부터 난항…규제 일변도 지양해야
업계는 신규 데이터센터 설립부터 쉽지 않은 정부 정책에 불만을 토로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시행을 준비 중인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정부가 분산에너지 활성화 대책 일환으로 전력계통에 대한 평가를 거쳐 전력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업계는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나 평가 시점부터 항목·절차 등 세부 요건이 산업계가 포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앞으로 10메가와트 이상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대부분의 데이터센터 해당)는 전력수전예전통지(기존 제도)를 대신해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아야한다.
이전에는 전력수전예전통지를 거쳐 전력 공급 가능성을 사전에 확인 한 후 부지확보와 투자 유치, 착공 등을 진행했다. 바뀐 제도에 따르면 전력수전예전통지가 없어진다. 전력 확보 여부를 알지 못한 채 부지 확보와 투자를 유치한 후 설계 전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아야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부지에 입주할 고객과 투자자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글로벌 기업은 이 같은 불투명한 상황 속에 무작정 투자하기 어려워져 제도 시행 후 투자 계획을 철회할 가능성까지 있다”고 말했다.
평가 항목도 문제다. 지역사회 수용성, 지역 기여도, 부가가치 유발효과 등 전력계통과 무관하고 평가자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항목이 다수다.
실제 한 데이터센터 기업이 평가 항목에 따라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50점을 넘기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 점수 70점을 넘겨야 전력정책심의회에 전력계통 여부를 최종 평가받을 수 있는데 70점을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업계는 판단한다.
데이터센터 기존 구축 사업자도 어려움을 겪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시행하는 '집적정보 통신시설 보호지침'으로 인해 데이터센터 안정성 확보 요건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업계는 데이터센터 안정성 확보가 중요한 사안임에 공감하지만 세부 개정안 적용에 따라 사업자 부담이 커진다는 점을 우려한다.
대표적으로 '원격으로 전력 차단이 가능한 UPS 제어시스템을 도입하라'는 조항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원격 전력 차단 기능을 도입한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격 기능이 도입되면 오히려 이를 악용하거나 사람 실수 등으로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터리실과 전기설비실 분리 △배터리 간 이격거리 확보 등 조항도 기존 데이터센터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지침은 이미 시행됐고 이번달부터 점검이 진행 중이다. 점검 결과에 따라 현실적으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개정에 반영돼야 사업자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 업계는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각국은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각종 지원책을 펼치는데 우리나라는 이와 반대로 규제만 강화되는 상황”이라면서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도 함께 고민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김지선 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