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권이 그래도 우리나라 방송 생태계에 기여한 게 있습니다. 곪아 있던 미디어 기구들 문제를 제대로 터뜨렸습니다. 제도 실패를 증명해 뜯어고칠 명분을 준 거죠.”
모 방송 미디어 전문가는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사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방통위는 5인 위원회 합의제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지난해 8월부터 '2인 체제'로 파행 운영돼 왔다. '위원장 임명-탄핵소추-임명' 되돌이표로 2년 가까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합의제 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어떤가. 초유의 '3인 체제'로 파행 운영 중이다. 방심위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 소관 상임위 등이 3명씩 추천해 구성된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 추천 몫 3명뿐이다.
공영방송 현안마다 갈등을 겪으며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미디어 정책은 실종됐다. 통신사 판매장려금 담합 문제,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위반 관련 과징금 부과,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요금 인상 등 현안이 산적하다. 방심위도 마찬가지다. 방송사에 대한 과도한 제재를 반복하고 있다. 실제 류희림 방심위원장 취임 이후 방송사에 의결된 법정제재 29건은 법원에서 모조리 제동이 걸렸다. 29건 모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 효력정지됐다.
방송 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와 방송의 사후 심의를 담당하는 방심위가 본래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방송 장악 도구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 정책 주요 축인 방통위·방심위 공백은 국내 미디어 산업 침체를 더욱 악화시키고 정책 신뢰성을 저하시킨다. 국내 미디어 산업의 시장·정책 모두 붕괴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방통위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기구를 둘러싼 문제점을 진단하고 방통위 위상과 역할 재정립, 이를 통한 국내 미디어 산업의 재도약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거버넌스 재구조화 방안에 대해 모색할 때다. 포스트 방통위·포스트 방심위를 준비하자.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
-
권혜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