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 문닫고 들어가 문열고 나온 전자파 인체영향 연구

최형도 ETRI 책임연구원(한국전자파학회 전자장과생체관계연구회 위원장)
최형도 ETRI 책임연구원(한국전자파학회 전자장과생체관계연구회 위원장)

1996년 매스컴에서 다룬 '휴대전화가 뇌를 달군다고?'라는 제목의 기사는 전자파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시급히 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는 한국전자파학회에 '전자기장과 생체관계 연구회'를 발족시켜 전자파에 대한 인체영향 연구를 추진했다. 당시만 해도 관련 연구는 전무한 상황이었고 해외 연구 도움을 받는 걸음마 수준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00년 첫 5개년 계획인 '전자파 인체영향 기본계획'을 수립해 전자파인체보호기준을 제정했다. 더불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전자파학회를 중심으로 전자파의 인체영향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시작됐다. 오늘날까지 5개년 계획은 5차례 추진돼 전자파 인체영향 연구를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인체보호기준 및 적합성 평가기준의 제·개정이 이뤄졌으며, 휴대폰, 방송국 등에서 노출되는 전자파에 대한 건강영향 연관성을 규명하는 역학연구와 세계에서 최초로 CDMA, WCDMA 동시 노출에 대한 동물·세포 연구 및 중간주파수에 대한 인체영향 규명 등 다양한 연구가 수행됐다.

초기에는 미국, 일본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을 어떻게 수립했는지, 어떠한 연구를 해야 하는지 등 관련 연구들에 대해 귀동냥했고,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전문가 자문그룹의 지역 회의를 유치해 이 분야 선진국들의 연구를 습득했다.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 전자파 인체영향 연구는 이동통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2015년, 2018년, 2023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다. 특히 2018년에는 정보통신분야에서 최우수 연구성과 선정 등 우수한 연구결과를 거뒀다. 이러한 국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국제적으로도 미국, 프랑스, 일본과 더불어 질적 논문을 많이 발표하는 국가로 급성장했다.

2013년부터 유럽연합(EU) 국가들과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연구결과의 신뢰성을 높이는데 주력했으며, BioEM 회장, ICNIRP 위원, WHO EHC 평가위원 등 국제전문가를 꾸준히 배출해 글로벌 연구개발(R&D) 기반을 다져왔다. 특히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미국 NTP 스터디 연구결과 타당성을 검증하는 '한일 공동 동물실험'에 있어 공학적 연구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했으며, 국가간 독성 동물실험 데이터 통합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보여줬다.

이렇듯 우리나라 전자파 인체영향 연구는 2000년에 문 닫고 들어가 2020년에 문 열고 나오는 선진 연구로 발돋움하게 됐다. 이는 법에 근거한 지속적 연구 지원이 이뤄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룬 우수한 연구 인프라가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있다. 전자파 인체영향 연구는 기술개발을 통한 개인적 이점, 취업 등을 고려할 때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매력이 없는 연구 분야로,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연구다. 과거 전문가들은 스스로를 어둠의 자식이라고 하며, 호기심과 국가관을 발휘해 열정적으로 연구에 참여했으나, 지금의 MZ세대에 이를 요구하기에는 무리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연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WHO에서는 전자파 위험성을 평가하는 한 명의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 국가의 임무형 R&D로서 전문연구그룹 육성, 국제전문가 멘티·멘토 지원 프로그램 운영, 효율성을 고려한 다학제간 및 다국가간 공동 연구 추진, 생체 영향 연구기반 구축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전자파 인체 영향은 주파수 활용이 있는 한 계속해서 이슈가 발생할 것이나, 연구에 우선순위를 고려해 꼭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전자파 인체보호 연구의 전문가들이 보람을 느끼며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조성되길 희망한다.

최형도 ETRI 책임연구원·한국전자파학회 전자장과생체관계연구회 위원장 choihd@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