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기술 국제표준 분야에서 각국이 전쟁을 치르는 중이며, 저 같은 표준전문가가 미래 가치가 있는 기술 영역에 국기를 꽂으려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술 영토가 조금이라도 확장되길 바랄 뿐입니다.”
이승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표준연구본부장은 국제표준 분야를 줄곧 '전쟁터'로 빗댔다.
본래 표준은 공통된 시장을 만들어 참여자 모두가 이익을 얻는 '상호호혜'의 장이었다. 그러나 '표준 특허' 확보가 시장 선점과 산업적 이익 창출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국가간 무역의 중요한 '무기'로까지 자리매김했다.
이 본부장은 “미국의 중국 견제가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개발 분야에서 국제표준 영역까지 확대된 것이 대표적인 예”라며 “심지어 자국 이익을 위해 동맹국의 표준 선점을 방해하는 비정한 싸움도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도 1999년 표준연구본부에 갓 배치된 시점에는 국제 표준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우리가 낸 결과물이 국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며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 매력에 빠진 지 25년. 이 본부장은 ETRI의 명성을 드높이며 수많은 기술 영역에 깃발을 꽂았다.
인터넷 기술 표준화를 위한 국제인터넷표준화기구(IETF)에서 활동하며 우리나라 최초 관련 표준(RFC 3338)을 만들었다. 또 국제전기통신연합 전기통신표준화부문(ITU-T),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에서도 표준개발 에디터, 그룹리더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W3C 한국 사무국장을 역임 중이고, ISO와 IEC 공동기술위원회인 JTC 1에서 컨비너(의장)로서 미래기술기획 그룹을 이끌고 있다. JTC1 클라우드 컴퓨팅 표준 활동(SC 38)에도 컨비너로서 활동 중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ITU-T와 함께 세계 최초 클라우드 표준을 공동개발한 것이다.
이 본부장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로 국제 표준화 활동에 임했는데, 돌이켜보니 성과가 적지 않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주목하는 국제표준 핵심 영역은 AI다. 이와 관련해 이 본부장이 주도하는 ETRI 표준연구본부 연구팀은 지난달 '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을 위한 데이터 품질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제정시키기도 했다. AI 품질과 관련된 최초 국제표준이다.
이 본부장은 “데이터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면 그 결과물 품질도 담보할 수 없다”며 “이번 성과는 AI 결과물의 안전성·신뢰성 확보 차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관련 세계 최초 표준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는 점도 뜻깊다”고 덧붙였다.
그가 앞으로 바라는 것은 국제 표준화 활동을 위한 보다 넓은 '운신의 폭'이다. 국제표준 경쟁이 날로 복잡해지고 첨예해지면서 기술 자체만으로는 성과 확대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책적 고려와 전략적 대응도 필요하다.
이 본부장은 “다양한 표준화 기구 정책 대응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표준화 과제 지원이 절실하다”며 “이를 통해 국제표준화단체의 상위기구 정책활동에도 관여할 수 있다면 국익 차원의 보다 면밀하고 지속가능한 국제 표준화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