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살 할머니도 안 봐준다…'나치 타자수' 1만건 살인방조 유죄

나치의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이름가르트 푸르히너(99). 사진=AP 연합뉴스
나치의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이름가르트 푸르히너(99). 사진=AP 연합뉴스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에서 타자수로 일했던 99세 할머니가 80여 년 만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일(현지 시각) 유로 뉴스 등에 따르면 독일 법원은 이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슈트슈타펠(SS) 사령관 비서로 일하며 1만건 이상의 살인을 방조한 혐의로 99세 여성 이름가르트 푸르히너의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푸르히너는 1943년 6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파울 베르너 호페 사령관의 비서 겸 타자수(속기사)로 일했다.

독일 검찰은 당시 그의 업무가 나치의 조직적 집단학살을 도왔다고 보고 1만 505건의 살인 방조와 5건의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이 같은 혐의로 2022년 12월 독일 이체호 주법원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자 항소했다. 독일법원은 그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푸르히너 측 변호인은 당시 18~20세이던 피고인이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으며, 강제수용소 이전 은행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가 사령관의 서신을 관리했으며, 수용소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대량 학살을 몰랐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그가 일하던 독일 단치히(현재 폴란드 그단스크) 수용소에는 1939∼1945년 약 11만 명이 수감됐고 이 가운데 6만 5000여 명이 사망했다. 수많은 전쟁 포로와 학살에 휘말린 유대인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고 아우슈비츠로 옮겨져 가스 실험을 받아 숨졌다.

독일 검찰은 2016년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들을 상대로 푸르히너의 학살 가담 정황을 수사한 뒤 2021년 기소했다. 푸르히너 역시 2021년 기소 대상이었으나 첫 재판 당일 양로원을 나와 도주해 96세, 세계 최고령 도주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법정에 강제로 세워진 푸르히너는 1심 재판 최후진술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죄송하다. 당시 슈투트호프에 있었던 걸 후회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라고 말했다.

현지 매체들은 이 사건이 국가사회주의(나치) 대량 학살에 대한 마지막 형사소송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