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187〉국가 혁신지형도 구축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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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지형도라는 개념이 있다. 이름이 의미하듯이 지표면의 지형을 상세하게 표현한 일종의 지도이다. 지형도가 주로 지형의 고저와 형태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면 혁신지형도는 기업의 혁신과 관련된다. 수없이 많은 혁신의 방식과 전략 중에 자신이 무엇을 수행하고 있는 지 면밀히 기록되어 있다.

지형도는 지형의 고저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등고선(동일한 고도를 연결한 선)을 사용한다면 혁신지형도는 자신이 해당 혁신을 위해 어느 정도의 자원을 투자하고 있는지, 특정 혁신 활동에 수반되는 기술적 인프라, 자산이나 자원, 관련 정책 및 규제, 인적 자원, 시장과 수요, 장애물과 기회에 관한 특징을 나타낸다.

기업에 혁신지형도는 자신이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전략과 자원 투자를 결행하고 있는 지를 도식화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점에서 혁신지형도는 기업의 혁신 여정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우리 정부는 물론 많은 공공연구소와 연구개발(R&D) 관리기관을 관통하는 관심사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R&D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R&D 예산은 세계 6위 수준이라는 투자에도 과거의 추격형 연구에 머물러 있고,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하는 혁신적 연구는 위축되어 있고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든 아니든 이런 시선이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면에서 혁신도전형 R&D를 강화하는데 대부분은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것인지, 기존과는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자신이 없는 듯 보인다. 다시 말해, 목표점을 어딘가로 정했는데 거기까지 어떻게 도달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참고할 것이 없는 셈이다.

이점에서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여러 부처는 물론 많은 전문가들이나 기관들이 인용하는 사례다. 이곳이 창안에 기여한 것을 새삼스레 나열할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우리가 아는 가장 지속적으로 급진적 혁신을 성공시킨 기관이 이곳의 정체성이다. 그런 만큼 이 조직의 성공원인에 관한 수많은 문헌들이 있고,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요인들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흔히 언급되지 않는 성공원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곳의 혁신전략이다.

바로 우리가 '파스퇴르 쿼드런트(Pasteur's Quadrant)'라고 부르는 가상의 혁신공간이다. 실상 이곳은 역설이 숨쉬는 곳이다. 굳이 자연지형을 빗댄다면 두물머리 같은 곳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우리는 혁신 지형의 상반된 끝에 위치하는 기초 과학적 이해와 실용적 목적이 공존하는 곳인 탓이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한편으로는 기초 과학적 발견을 실용적이고 임상적인 응용으로 전환하는 전이(Translational) 연구를,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이나 기술의 본질적인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 산업, 또는 학문적 분야를 개척하는 변혁(Transformational) 연구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DARPA의 성공은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이런 당연한 노력이 획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체적 경로와 방법에 근거해 추구되어 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혁신도전형 DARPA와 획기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 혁신지형도' 혹은 '국가 혁신전략지도'의 구축이 필요하다. 정책을 말하면서 피터 드러커나 블루오션의 김위찬-르네 마보안 같은 경영학자의 조언을 떠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는 뭔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오류와 전략의 부재가 대개 거기 굳게 자리 잡고 있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