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내 안에 '악'은 얼마나 평범하게 자리 잡고 있는가

홍대순 광운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홍대순 광운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악의'가 없어도 '악인'이 될 수 있다면?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학살의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이다. 1961년 이스라엘 재판소에서 아이히만이 법정에 섰다. 재판에 참석한 사람들은 수백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마 아이히만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사악한 악마 같은 괴물 또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이 아닌 너무나도 지극히 평범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아이히만은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보였고 재판장에서 진술하는 어조도 차분했다. 재판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도저히 아이히만이 살인마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을 엄청난 충격에 몰아넣은 것은 그의 법정 진술이었다. “저는 상부가 시키는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나치 정권 독일에서 히틀러의 말은 곧 법이었습니다. 법을 준수하는 것은 공직자가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관이 지시한 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일관했다. 나아가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본인의 참혹하고도 끔찍한 행위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제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 사례에서 우리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악의 평범성은 독일계 미국인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1963년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책에서 제시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惡)' 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아이히만처럼 상관의 명령에 충실하게 복종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아이히만에게 돌아온 것은 '악마' ,'악인'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이히만은 악인이 되었으며, 악(惡)은 무엇인가? 아이히만이 우리에게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외친다면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일이지 않은가? 아이히만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악한 의도를 가지지 않아도, 평범하게 하는 일 중 무엇인가는 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혹 우리도 삶을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우(遇)를 범하는 것은 있다면? 이처럼 '악'은 '특별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매복하여 자라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악인이 된 결정적 원인은 바로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사유(思惟) 하지 않는 천박함'에 기인한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임을 우리는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한나 그랜트는 “악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깨우치려 하지 않는 '무관심' 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고 강조한다. 또한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 최악의 악은 선하다고 자부하는, 귀찮아하는 다수에 의해 탄생된다 “고 했다.

우리는 진정 얼마만큼 사유하며 살아갈까? 사유하지 않음으로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직·간접적으로 해를 끼친 것은 없을까 ? 악은 자칫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으니, 이제부터 정신바짝 차리고 사유하자! 생각할 때 비로소 나 자신이 이 세상에 참되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홍대순 광운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hong.daesoon@kw.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