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그룹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세 번 변하고 한 세대가 바뀌는 긴 시간이다. 오치영 지란지교소프트 설립자는 이 시기를 살아남았고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며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한 업종에서 30년 이상 사업을 영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도 어렵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는 더 어렵다. 회사는 잘하고 있는데 시장이 안 좋아서 위기를 겪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30년 이상 된 국내 기업은 전체의 4.3%에 불과하다. SW 분야로만 놓고 보면 비트컴퓨터, 한글과컴퓨터, 영림원 등 손에 꼽힌다. 특히 열악했던 국내 SW 산업, 창업 환경을 감안하면 지란지교그룹 창립 30주년은 단순히 서른 번째 생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업이 30년 이상 존속하기 위해선 기술력은 물론 자본, 캐시카우 등 현실적 조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리더의 확고한 신념'과 '생태계 조성', 그리고 '성공적 세대교체'다.
장수하는 기업의 공통된 특징은 리더의 의지와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향을 설정해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밀고 나간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나침반은 가끔은 흔들려도 결국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리더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영림원이 30년 넘게 전자자원관리(ERP) 한 길만 걸어온 것도 목적을 중시하는 설립자 권영범 대표의 경영철학에 따른 것이다.
생태계 조성도 필요하다. 기업 혼자만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은 드물다. 생태계가 성장해야 기업도 지속 성장할 수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진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벤처 1호 창업가인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교육센터를 통한 인력양성,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와 한국벤처기업협회 등의 설립을 주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란지교그룹 역시 '지란포레스트'라는 생태계를 제시하며 '나'와 '우리'를 넘어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생태계 조성은 사회적 기여를 생각하는 ESG 경영과도 직결된다.
성공적 세대교체는 30년, 40년을 넘어 100년을 바라보기 위한 필수요소다. 장수 기업들은 세대교체를 중요시 여기며 원만한 인적자원 순환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기업 내에서 성장한 인재들에게 기회를 주는 동시에 젊은 임원들을 앞세워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세대들의 노력은 이를 위한 밑거름이 되면 된다.
기업의 영속성은 한 기업뿐만 아니라 해당 산업, 나아가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수 기업은 국가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100년이 넘는 4만여개 기업이 일본 경제의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도 늦었지만 식민지 시대, 전쟁 등 기업이 오래 존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연속됐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과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장수 기업이 계속 등장할 것이고 그 수도 매년 늘어날 것이다. 수천, 수만개의 100년 기업이 우리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안호천 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