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침입하면 독성 물질로 가득 찬 배낭을 찢어 공격하는 '자폭 개미'가 어떻게 독극물을 안전하게 들고다니는지 과학자들이 그 작동 매커니즘을 밝혀냈다.
최근 과학전문매체 피즈닷오알지(phys.org)에 따르면, 체코 과학아카데미 유기화학 및 생화학 연구소는 지난달 15일 프랑스령 기아나에 서식하는 흰개미 '네오카프리테르메스 타라쿠아'(Neocapritermes taracua; 이하 '자폭 개미')를 연구한 결과를 구조 생물학 분야 저널 '스트럭처'(Structure)에 게재했다.
이 자폭 개미 군집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서식지를 방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벌 흰개미들이 수명이 다하면 공격을 받았을 때 폭발하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독성 액체를 뿌리고 '자폭'하는 방식이다.
과학자들은 이 개미가 자폭으로 집을 지킨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정확한 '자폭'의 매커니즘은 알 수 없었는데, 이번 연구에서 자폭 방법이 확인됐다.
자폭개미 중 일개미들은 일생에 걸쳐 '블루 라카제 BP76'이라는 효소를 특정 주머니 안에 축적한다. 집단이 위험에 처하면 나이든 개체가 이 '배낭'을 찢어버리는데, 이렇게 되면 순식간에 몸 속 다른 샘에서 분비된 또 다른 효소와 섞이게 된다.
두 효소가 섞이면 매우 독성이 강한 벤조퀴논을 함유한 끈적끈적한 액체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통해 포식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거나 죽일 수 있다. 배낭을 찢은 개미 스스로도 죽게 된다.
자폭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복부 속 한 쌍의 샘에는 일평생 효소가 축적되고 자폭 개미가 스스로 찢기 전까지 매우 안전하고 단단한 구조를 가졌는데, 연구팀은 배낭 속 효소 구조를 3차원으로 분석해 그 이유를 알아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효소 활성 부위 근처에서 단백질 구성 요소인 두 아미노산(라이신, 시스테인)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강한 화학적 결합이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이 같은 결합은 효소에서 발견되지 않는데, 자폭 개미는 이 결합이 이뤄져 BP76을 고체 형태로 저장할 수 있다. 이 결합이 마치 특수 잠금장치처럼 작용해 효소의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찢는 즉시 폭파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폭 개미의 BP76은 마치 접힌 종이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 덕분에 일평생 열대 우림을 안전하게 누비면서, 비상 시 자폭해 군집을 지키는 자폭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연구실 책임자인 파블리나 르제자초바는 “우리의 발견은 구조 생물학의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기기의 개별 구성 요소에 대한 지식이 기기의 작동 방식을 밝혀주는 것처럼, 분자의 3차원 구조(즉, 개별 원자의 위치)를 아는 것은 생물학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