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단지가 출범 60년을 맞았다. 수출 산업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1964년 설립한 산업단지는 출범 초 섬유, 봉제 업종을 시작으로 석유화학, 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까지 지원했고 현재 업종 고도화를 넘어 디지털·탄소중립 전환을 도모한 첨단산업 기지로 변모하고 있다. 산업단지 출범 60년을 맞아 그 간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1960년대 경공업 육성 수출 지원…최초 수출산업공업단지 '구로 제1단지'
1960년대 당시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며 원조 의존 경제체제에서 벗어나고 근대화와 자립경제의 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다. 자본과 기술, 자원이 부족한 실정에서 단기간에 경제개발 성과를 거두기 위한 전략은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경공업 육성을 통해 수출을 늘리는 길뿐이었다.
1964년 9월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제정되며 우리나라 계획입지의 효시인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개발이 본격화됐다. 총면적 45만2900㎡ 규모의 서울 구로동 제1단지 조성을 위해 같은 해 12월 부지정지공사에 착수했으며 1965년 3월 기공식을 갖고 1966년 2월 완공했다. 단지 전역이 단일 보세구역으로 설정돼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산업공업단지로서 손색없었다.
구로동과 함께 후보지로 선정됐던 인천 부평지구도 별도의 산업단지로 추진됐다. 1969년 세칭 부평공업단지로 조성돼 1971년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로 통합, 흡수되면서 제4단지로 개칭됐다.
당시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의 주요 업종은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섬유, 봉제, 전자, 잡화 등이었다. 제1단지와 제2단지가 가동되던 1969년에는 섬유, 봉제업종이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했다. 섬유, 봉제업종은 12년 동안 연간 수출액의 평균 44.4%를 차지하는 등 10년 동안 1위 자리를 유지하며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의 수출을 견인했다.
◇1970년대 산업단지 효율적 운영 도모…'경공업→중화학'
정부는 1977년 12월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을 폐지하는 대신 1978년 공업단지관리법에 흡수시킴으로써 관리행정의 일원화했다.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을 적용받던 한국수출산업공단과 구미수출산업공단의 주요 업무가 단지 조성에서 관리업무로 전환되며 관리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제1·2차 경제개발 계획을 성공시킨 정부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했다. 1970년대 초 수출용 원자재의 국산화를 위한 생산 기반을 확충해 나갔으며 수출정책도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개선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화학공업화' 선언에 이어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고 창원, 여천, 온산, 구미, 포항 등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국가공업단지 지역관리제 도입
1992년 1월 상공부는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기존의 관리공단이 지역 내 국가산업단지를 일괄 관리하도록 하는 '국가공업단지 지역관리제'를 시행했다. 기존의 국가산업단지 및 신규로 조성되는 국가산업단지의 관리업무는 관리공단의 별도 설립 없이 인근 지역에 소재한 관리공단이 관리하도록 하고 관리기관별 대상지역을 지정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국가산업단지는 한국수출산업공단, 서부지역공업단지관리공단, 중부지역공업단지관리공단, 동남지역공업단지관리공단, 서남지역공업단지관리공단 등 5개 공단과 이리수출자유지역관리소가 관리를 전담하게 됐다.
이로써 우리나라 국가산업단지는 6개 지역으로 나뉘어 일괄 운영되면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해졌으며 향후 전국적인 단일 관리공단으로 통합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첫 발…산단 통합관리 시대적 요구
산업단지는 1990년대 들어 다시금 변화의 기회를 맞았다. 기술경쟁 심화와 후발 신흥공업국의 추격 등에 직면하고 지식기반 경제로 산업구조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정보기술(IT) 등 신사업 육성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한 시장 개방이 본격화되며 산업경쟁력 향상이 중요해지고 기업이 산업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1996년 10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쟁력 10% 높이기' 정책을 주창했다.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를 극복하고 국가 경쟁력을 회복하자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 5개 관리공단 통합방침이 발표되자 1996년 10월 공단협회를 중심으로 '국가산업공단 통합추진반'(이하 통합추진반)이 구성됐다. 이후 이듬해인 1997년 1월 10일 창립기념식을 개최한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은 전국 단일조직으로 공식 출범했다.
그동안 권역별로 운영되어온 산업단지관리공단이 전국 단일조직으로 출범하면서 공단 운영도 전환점을 맞았다. 특히 지원기관으로 입주기업에 대한 수준 높은 서비스체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2000년대, 지속가능한 산업단지로 혁신
2013년 3월 산업단지 1000개 시대에 들어섰다. 그해 말 기준 전국의 산업단지는 1033개, 지정면적 1367k㎡로 전 국토면적(10만 140k㎡)의 1.4%를 차지했다. 이들 산업단지는 전국 제조업 생산의 65%, 수출의 76%, 고용의 44%를 담당할 정도로 성장해 한국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산단공은 2014년 1월 본사를 대구로 이전하며 새 시대를 열었다. 1964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서울 구로동에서 대역사를 이어온 지 50년 만이었다. 산단공은 2014년 2월 19일 대구혁신도시 신청사 개청식을 거행하고 산업단지의 혁신을 이끌어갈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2014년 기준 산단공은 전국적으로 53개 산업단지를 관리하고 이들 산업단지에는 5만여 입주기업과 100만 명의 근로자들이 근무했다.
이후 정부가 2018년 국정과제로 '산업단지 혁신 2.0'을 채택하거 업종고도화를 넘어 창업·혁신·문화·복지 공간까지 어우러진 산업단지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단공도 구조고도화사업본부를 산단혁신본부로 변경하고 산단 스마트화, 입주기업 경쟁력 강화 지원 등 소프트웨어 기능을 확충하고자 전담부서로 산단스마트화지원단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산단공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산업단지를 스마트환경으로 구축하는 산단 스마트화를 추진하며 산업단지 혁신에 속도를 높였다.
◇디지털 전환·탄소중립 선도, 산단 혁신 총력
2020년대 이후는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이 산업계 핵심 기치로 내걸었다. 작년 6월 산단공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한 이상훈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산업단지를 디지털·저탄소의 혁신공간으로 전환하고 기업의 매출과 경쟁력 제고를 지원하는 선도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산단공은 산업단지 혁신의 전제가 되는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을 위해 스마트그린산단 사업에 역량을 모았다. 스마트그린산단 사업은 올해 현재 18개 거점 산단으로 확대됐다.
아울러 산단공은 오는 2027년까지 디지털 전환 산업단지 수를 총 25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산업단지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발표했다. 기업 내, 기업과 기업 간, 산업단지와 산업단지 간 데이터가 공유되고 활용되는 지능형 산업단지를 목표로 했다.
산단공은 산업단지 디지털 전환 첫 단계로 2027년까지 제조, 에너지, 안전 등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를 조성해 기업 내 데이터 공유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2단계에서는 2029년까지 유무선 네트워크 구축, 데이터 전문인력 양성 등을 통해 기업 간 데이터 공유 생태계를 조성하고 3단계로는 2032년까지 산단 간 초고속 네트워크로 연결해 데이터를 공유하는 지능화 산업단지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산단공은 산업단지 출범 60주년을 맞아 '글로컬 성장거점'으로 재도약하는 산업단지의 변화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디지털 전환 인프라 구축과 저탄소 산단 구현으로 전통산업 위주에서 첨단·신산업으로, 청년층이 기피하는 산업단지에서 청년 인재가 유입되는 산업단지로의 변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산단공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산업단지 재도약의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1966년 '구로 수출산업공단' 최초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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