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정부가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에 나선 가운데 가계통신비 절감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말가격 인하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급제 비중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동통신사 보조금 경쟁 활성화만으로는 고가 단말 구매 부담을 낮추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12일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단통법 폐지 세미나'에서는 산업계와 소비자단체, 정부 등 각계 전문가가 모여 법안 폐지 이후 이용자 편익 증대와 부작용 최소화 대책 등을 논의했다. 토론회에서는 단말 가격 인하 없이 지원금 규율만으로는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에 한계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정광재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실장은 “자급제 단말 가입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단말기 보조금 중요도가 감소하고 있다”면서 “통신시장 경쟁 뿐 아니라 단말시장 가격경쟁까지 폭넓게 정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통법 도입후 국내 단말기 출하량은 줄어든 반면 가격은 꾸준히 상승세다. 특히 자급제 가입비중이 30%에 달하면서 기기 할인 대신 선택약정 할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25% 요금할인을 선택한 가입자는 2700만명 수준으로 전체 가입자의 절반에 육박한다.
송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실장은 “삼성과 애플과 과점체제에서 이통사 단말기 지원금만으로는 소비자의 단말 구매 부담을 낮추기는 어렵다”며 “가계통신비에는 통신서비스 외에 단말가격과 OTT 등 콘텐츠 비용도 포함된 만큼 지원금 경쟁 촉진뿐 아니라 단말가격 인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통신비 인하를 위해 단말과 요금제 판매를 분리하는 완전자급제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알뜰폰과 소비자단체에서도 중저가 단말 출시를 유도할 수 있는 단말기 경쟁 활성화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황성욱 알뜰통신사업자협회 부회장은 “단말기 지원금 확대는 오히려 자금력 격차로 인한 알뜰폰 가입자 이탈만 부추길 것”이라며 “단말 가격을 낮추려면 제조와 서비스 시장을 분리해 단말과 통신을 결합해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다만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단말·통신 분리 판매가 휴대폰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 윤남호 삼성전자 상무는 “완전자급제를 한다고 해도 쓸 수 있는 재원에는 큰 변화가 없다”면서 “오히려 소비자 불편으로 유통망이 축소되고 시장규모가 위축돼 단말기 판매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 상무는 단말 가격 상승 지적에 대해 “글로벌 스마트폰 경쟁을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하고 있고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도 제품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용자 보호 필요성도 강조됐다. 지원금에 대한 제한을 없애 시장 자율 경쟁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선택약정 제도 등 기존 이용자 혜택 규정은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소비자 후생은 강화한다.
조주연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시장조사과장은 “법 폐지 이후에도 사업자 경쟁 심화로 나타날 수 있는 부당한 이용자 차별과 이용자 이익 저해 행위 등 부작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